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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준 칼럼] 천년고찰 화엄사의 특별한 음악제

여러 나라 전통·현대 악기, 창과 구음 어울린 무대

본래 그대로의 자신을 스스로 아는 ‘자명’ 깨달아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7-09-21 19:04:43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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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화엄사에서 열린 화엄음악제를 다녀왔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하늘은 푸르고 높고, 들판은 익고 있었다. 잘 여문 밤송이가 벌어지고, 감이 주렁주렁 달린 풍경은 가을의 정취를 느끼게 했다. 나는 천년고찰 화엄사와 각별한 인연이 있다. 화엄사에서 불교의 계율을 지키겠다는 서약을 했고, 법명을 받았다. 흔히 오계라고 하는 생활 규범인 목숨을 죽이지 않고,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않고, 음행(淫行)을 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지 않고,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 서약을 했다. 생활하면서 지키기 꽤 어려운 계율들이어서 지키지 못하고 범했을 때는 참회를 잦게 했지만 말이다.

올해로 화엄음악제는 12회째를 맞았고, 지난 15일부터 사흘간 열렸다. 올해 음악제의 화두는 ‘자명(自明)’이었다. 화엄사 주지 덕문 스님은 화엄음악제의 주제인 ‘자명’을 이렇게 설명했다. “‘자명함’은 지당한 사실을 스스로 아는 것입니다. 그것은 불교에서의 깨달음 직지인심(直指人心·자기 자신의 마음을 곧바로 보는 것) 견성성불(見性成佛·본래 그대로 청정한 자신의 본성을 아는 것)에 이르는 통로입니다.” 화엄음악제를 즐기면서 자기 자신의 마음이 마치 만월(滿月)처럼 청정한 빛으로 가득 채워져 있음을 알라는 취지인 듯했다.

화엄사에 들어서자 절 마당에 국보 301호 화엄사영산회괘불탱이 12m의 높이로 가을 하늘 아래 내걸려 있었다. 대웅전과 각황전을 순례하고, 산내 암자인 구층암도 둘러보았다. 특히 구층암은 모과나무 기둥을 다듬지 않고 그대로 원래의 생김새를 살려 요사채를 지은 것이 특별한 느낌을 주었다. 천 분의 토불을 모신 천불보전도 좋았다. 템플스테이에 참가한 외국인이 모과나무 기둥에 기대고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은 한심(閑心)을 느끼게 해 부러웠다.

공연이 시작되는 저녁 7시가 임박해지자 수많은 인파가 무대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특히 젊은 관객들과 외국인들이 흥성거려서 화엄사 경내는 활기가 넘쳐났다. 법고와 범종 소리가 지리산 능선을 넘어가면서 음악제는 시작되었다. 신현필이 연주하는 색소폰 소리와 범종 소리가 교차하고 어울리면서 울려 퍼져나갈 적에는 유장하고 신비한 화음이 느껴졌다. 절에서 재를 올릴 때 쓰는 음악인 범패를 대한불교조계종 어산어장 인묵 스님과 여러 스님이 선보였고, 선훈 스님의 법고무도 많은 박수를 받았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6호 거문고산조 인간문화재 이재화 선생이 보여준 거문고 산조는 당기고 늦추면서 신명과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올해에는 세계 8개국에서 온 음악인들이 화엄사에 함께 머물면서 이른바 ‘화엄 레지던시’를 처음으로 열었는데, 작곡가 롤프 하인드, 리코더 연주자 에릭 보그스라프, 클래시컬 넥스트의 디렉터 제니퍼 다우터만 등 왕성한 활동을 하면서 사랑받는 세계적인 음악인이 대거 참여했다고 한다. 이들은 화엄사에서 음악의 미래와 영성에 관해 토론했고, 화엄음악제를 위한 무대를 별도로 준비했다. 한국, 미국, 영국, 카보베르데, 불가리아, 레바논, 모로코, 일본에서 온 20여 명의 음악인이 보여준 무대는 무척 인상적이었다. 이들은 언어와 국경과 종교를 넘어 누구나 이해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무대를 선보였다. 특히 제니퍼 다우터만은 화엄음악제 총감독 원일과 함께 공연 전에 무대에 올라 화엄음악제에 참가한 소감을 밝혔다. 그녀는 선(禪)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을 크게 드러내면서 “작년에 처음 와 큰 잠재력을 보았습니다. 산사에서 펼쳐지는 이 음악제가 전 세계에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정적, 깨달음, 수행, 선에 대해 음악가들이 공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번에 세계 각국의 음악인을 초대했습니다. 화엄음악제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합니다”라고 말했다. 화엄 레지던시에 참가한 음악인들이 공동으로 창작해 무대에 올린 ‘자명’이라는 곡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여러 나라 전통 악기 및 현대 악기, 창(唱)과 구음(口音)이 크게 한판을 벌인 무대였다.
음악제를 관람하면서 든 생각 가운데 하나는 사찰 공간의 모든 건물과 조형물과 사찰을 에워싸고 있는 자연 그 자체가 하나의 멋진 무대가 될 수 있겠다는 것이었다. 가령 사사자삼층석탑과 공양석등, 내걸린 화엄사영산회괘불탱, 불 켜진 법당, 기와지붕의 곡선, 그리고 지리산 능선의 부드러움과 높은 하늘에 보석처럼 빛나는 별까지 이 모두가 무대를 꾸미고 장식하는 하나하나의 귀한 것들이었다. 각황전 지붕 위로 여러 형태의 문양들이 조명을 받으면서 움직일 때는 대중들로부터 함성이 쏟아져나왔다. 이는 사찰이라는 공간이 얼마나 미적으로 완성된 곳인지를 방증하는 것이라고도 하겠다.

전국의 많은 사찰에서 해마다 산사음악회를 열고 있다. 오대산 월정사와 봉화 청량산 청량사, 부산 혜원정사, 해남 미황사, 서산 부석사 등의 산사음악회는 꽤 이름이 났다. 첩첩의 산중에서 펼쳐지는 산사음악회의 향연은 성장을 계속해왔다. 지역민과 함께 여는 음악회는 상당히 고무적인 성과를 내기도 했다.

화엄사의 화엄음악제를 지켜보면서 영성 음악 축제라는 것을 깊이 실감할 수 있었다. 한국 불교의 정신을 널리 알릴 수 있는 뮤직 페스티벌로서의 가능성 또한 과시했다고 생각한다. 사찰을 찾은 많은 이가 맑고 고요한 마음을 분명 얻고 갔을 것이다.

“깊은 산 홀로 앉아 만사가 가벼우니/ 문 닫고 온종일 무생(無生)을 배우네/ 내 생애를 되돌아보니 아무것도 없고/ 여기 한 잔의 차와 한 권의 경전이 있네.” 부휴(浮休) 선수(善修) 스님의 선시이다. 맑고 고요한 마음의 내용은 이 선시에서 드러내고 있는 허심(虛心)이 아닐까 한다. 소동파는 계곡의 물소리를 장광설(長廣舌)이라고 했고, 산색(山色)을 청정신(淸淨身)이라고 했다. 나는 화엄사 계곡의 물소리를 듣고, 지리산의 산빛을 보고 돌아왔다. 동시에 엄격한 수행의 공간인 산중 사찰의 산문이 사부대중들을 향해 활짝 열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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