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종말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제기돼 온 이야기다. 여러 학자와 기관에 따라 그 도래시기에 다소 차이가 있을 뿐, 우리 가까이 있는 미래로 받아들여진다. ‘2040년에 석유가 바닥난다’(국제에너지기구), ‘석유와 가스 자원이 고갈되는 2050년에 인류 최대의 위기가 닥칠 것이다’(프랑스 에너지 연구가) 등의 예측이 벌써 나왔다. 미국 중앙정보국은 1980년대 레이건 대통령 시절에 2075년을 ‘석유 고갈의 해’로 보고했다고 한다. 에너지 대재앙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가 시간이 흐를수록 무게를 더하는 양상이다.

프랑스의 저널리스트 제롬 보날디가 10년 전에 ‘석유 없는 삶’을 펴낸 것도 그런 흐름에서다. 머지않아 닥칠 석유 고갈 시대에 살려면 삶의 방식을 바꾸라고 그는 설파한다. 덜 쓰고 덜 버리는 삶이다. 석유문명에 대해 ‘파티는 끝났다’고 표현한 미국의 전문가 리처드 하인버그 교수는 에너지 사용을 줄이고 재생 가능한 대체자원으로 옮겨가는 것 외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했다. 어쩌면 석유가 바닥나는 시기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공급이 수요보다 만성적으로 부족한 ‘피크타임’에서 인류의 에너지 재앙은 시작되니까.

석유 고갈의 위기감이 높아지면서 각국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네덜란드와 노르웨이는 2025년에, 프랑스는 2040년에 휘발유·경유 등 화석연료 차량 판매를 금지한다는 소식이다. 세계 최대 석유 수입국인 중국 정부는 화석연료 자동차의 생산·판매를 중단하기 위한 일정표를 마련 중이라고 지난 9일 밝혔다. 우리나라는 뒤처져 있지만,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들은 이미 전기차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화석연료 차가 시장에서 퇴출돼 박물관으로 들어가는 건 이제 시간문제인 듯하다.

바야흐로 에너지 대전환의 시대다. 세계적으로 친환경 에너지 추세가 가속화되고 있다. 작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서 새로 짓는 전력설비의 86%가 재생에너지에 집중된 사실이 그걸 말해준다. 화석연료 의존이 과다하고 선진국보다 신재생에너지 보급이 현저히 낮은 우리로서는 필수 과제다. 새 정부가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 정책을 표방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친환경 에너지 하면 독일 프라이부르크가 첫손에 꼽힌다. 1970년대 유가 급등으로 이 지역에 원전이 추진되자 시민들은 전력자급에 힘을 쏟아 원전과 화력발전 도입의 명분을 없앴다. 지금 이 도시에는 태양광 태양열을 활용해 난방하는 건물이 수두룩하다. 독일에서 보듯 에너지 전환의 방향은 원전, 석탄 등의 발전을 줄이고 에너지 수요관리와 함께 재생가능 에너지를 늘리는 것이다. 재생가능 에너지는 원전과 달리 투자·설치·운영에 있어 지방자치단체와 주민이 참여하는 모델을 만들 수 있다. 지역에 일자리도 증가하게 된다. 이를 위해서는 에너지 분권이 이뤄져야 한다. 자치단체가 주민과 함께 지역 특성에 맞는 에너지정책과 예산 등을 수립, 시행하는 것이다.

국내 최대 원전단지인 ‘고리’를 낀 부산도 올해 클린에너지 도시를 선언하고 나섰다. 민관 협치의 틀로 에너지정책위원회를 만들고, 이런저런 에너지사업을 진행 중이다. 지난 14일에는 에너지계획 수립을 위한 시민원탁회의가 출범했다. 행정기관과 일부 전문가들이 좌지우지했던 데 비하면 큰 변화다. 하지만 부산은 다른 지역보다 후발주자다. 아직 초보 단계로 갈길이 멀다. 에너지계획과 정책에 더 많은 시민의 목소리가 수렴되고 의미 있는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지역사회의 역량과 지혜를 모아야 하겠다. 자칫 민관 협치가 실질적 기능 없이 형식주의로 흐르고, 광범위한 시민참여가 담보되지 않는다면 유명무실할 수도 있다.

하인버그의 여러 저서 중 ‘미래에서 온 편지’(2010년)가 눈에 띈다. 화석연료에 중독된 인류에게 보내는 경고의 메시지다. 책 내용 중에는 저자가 100세 나이의 2107년에 살고 있다는 가정 아래, 과거를 돌아보며 2007년 사람들에게 띄운 편지가 있다.

“에너지 부족을 기술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던 건 어리석었습니다. 그것은 에너지의 풍요를 전제로 발명되었고, 에너지를 생산하지는 못했죠. 핵 발전소가 있었지만, 이 물건은 악몽으로 판명 났지요. 화석연료 고갈 이후 불경기가 끝없이 이어졌고 상점들은 텅 비었습니다. 우리는 음식과 물 부족, 거리의 노략질, 예측 불가능한 기후, 산더미 같은 쓰레기 등에 둘러싸인 암흑 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어른들은 자원을 다 써 버렸고 자식들을 위해 남겨 놓은 게 없었죠. 지난 50~60년 동안 사람들은 쓸만한 물건을 찾아 거의 모든 매립지를 다 파헤쳐야 했습니다.”

하인버그의 경고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그의 말처럼, 장래에 이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고 이 편지가 정말 쓸모없는 기록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논설위원 ksyo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