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끼리의 사랑을 그린 우리나라 사극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장면이 ‘신방 엿보기’다. 혼사를 마친 신랑과 신부가 첫날밤을 어떻게 치르는지 훔쳐보려는 장난스러운 행동이다. 신랑 신부의 이웃들은 창호지를 바른 신방 문에 구멍을 낸 뒤 행여 들킬새라 쉬쉬하면서 궁금증을 해소하려 안달을 한다. 그러나 대개는 신경이 날카로워진 신랑이 갑자기 문을 활짝 열어젖혀 구경꾼들을 쫓아내는 것으로 일은 마무리된다.

‘신방 지키기’라고도 불리는 이 행위가 어디에서부터 시작됐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민속학계에서는 이 풍습이 조선시대 성행했던 조혼(早婚)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성적으로 성숙하지 않은 철모르는 꼬마 신랑이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신부와 혼례를 올리는 사례가 많았던 까닭에 혹시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몰래 신방을 지켜봤다는 추측이다.

그렇지만 이런 습관에 대해서는 당시에도 부정적인 시각이 적지 않았던 것 같다. 조선시대 대학자인 이덕무는 ‘청장관전서’라는 책에서 ‘집안 부인들이 신혼부부의 사담을 엿들으니 어찌 그런 누추한 짓을 할까’라고 한탄했다. 또 가풍을 중시하던 양반집안에서도 이런 풍습은 잘 행해지지 않았다고 한다.

호사가들 사이에서는 이 신방 엿보기가 관음증의 한 형태가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떠돈다. 얼핏 틀린 말도 아닌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현대 의학계가 관음증을 성적 도착증세의 하나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주장은 설득력을 갖기 힘들다. 큰 악의성이 없었던 데다 공동체 생활의 하나로 받아들여졌던 신방 엿보기와 달리 현대사회에서 타인의 은밀한 사생활을 훔쳐보는 것은 그 자체로 심각한 범죄행위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 이런 몰래 훔쳐보기는 날로 늘어나고 있다. 경찰청이 집계한 범죄통계를 보면 지난해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죄’ 적발 건수는 5170건에 이르렀다. 2011년(1535건)보다 3.4배가 증가했다. 은밀하게 촬영을 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춘 카메라의 불법 수입 사례도 적지 않다. 관세청에 따르면 2013년부터 지난 8월까지 2254대의 카메라(1억4900만 원 상당)가 몰래 국내로 반입되던 도중 발각됐다.

‘몰래 카메라’를 통한 촬영은 지금에 와서는 사실 새삼스러운 일이 못 된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누구라도 쉽게 해당 장면을 볼 수 있다. 불법 촬영은 범죄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 저지를 것이라는 일반적인 생각도 무너진 지 오래다. 경찰에 현행범으로 체포된 이들 가운데는 판사나 교수, 공무원, 교사, 경찰관, 국가대표 출신 운동선수 등 멀쩡해 보이는 이들도 버젓이 들어 있다.

이 범죄는 장소와 시간도 가리지 않는다. 도시철도를 비롯해 목욕탕, 화장실, 수영장 탈의실 등 어느 한 곳 안심할 만한 공간이 없다. 장비가 첨단화, 소형화되면서 어느 것이 불법 촬영 기기인지를 알기도 어렵다. 도시철도 내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평범한 인상의 사람이 낀 안경에, 무언가를 적고 있던 필기구 등에 몰래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다면 기가 찰 일이 아닌가.

상호 합의로 애정행위를 촬영했으나 결별 후 의도적인 유출로 인해 당사자가 엄청난 피해를 입는 일도 드물지 않다. 이른바 ‘보복성 영상물(리벤지 포르노)’ 유포다. 피해자의 의뢰를 받은 전문 업체가 삭제작업에 나선다지만 온라인을 통해 한 번 퍼지기 시작한 영상물을 완전히 없앤다는 것은 아주 힘들다. 이 때문에 피해자의 주류를 이루는 영상물 속 여성들은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할 지경에 이르게 된다. “나는 결코 포르노 배우가 아니다”라는 이들의 절규가 절실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국민들의 불안감이 높아지자 최근 정부는 뒤늦게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 자리에서 ‘디지털 성범죄 피해 방지 종합대책’을 내놨다. 범죄자의 처벌 수위를 지금보다 높이고 몰래 카메라의 판매 등에 대해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피해자의 요청이 있으면 실시되는 불법 영상물의 삭제 및 차단 기간도 현재 평균 10.8일에서 3일 이내로 줄어든다. 보복성 영상물 배포에 대해서는 아예 벌금형을 없애고 무조건 징역형으로 처벌하기로 했다.

정부의 이런 조치가 디지털 성범죄 예방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속단하기 어려우나 문제 해결의 출발점은 된다. 누구나 느낄 터지만 몰래 훔쳐보기가 난무하는 곳은 추악한 사회다. 서로를 믿지 못하게 만드는 불신의 사회다. 그래서 ‘몰래 카메라 공화국’ ‘관음증 사회’라는 자조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필요할 때다. 누가, 언제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가 될지 몰라 불안해 한다면 이게 어디 사람사는 세상이라 할 수 있겠는가.

논설위원 haore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