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일 부산 사상의 인적 드문 골목에서 14살 중학생 A양이 또래들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했다.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이라 불리는 이 사건을 저지른 10대들의 ‘잔혹성’은 상상도 못 할 만큼 끔찍하다. CCTV에 잡힌 폭행 장면에서 가해자들은 철골자재 소주병 벽돌 쇠파이프 의자 등으로 피해자를 가격했으며, 담뱃불로 몸을 지지기도 했다. 게다가 폭행 후 피해 학생을 무릎 꿇려 사진을 찍는가 하면, SNS에 공개하는 등 과시적 행동이 더 큰 공분을 일으켰다. 이는 곧 ‘소년법’ 폐지에 대한 청와대 청원으로 이어졌고, 유사 청원까지 더하면 약 4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소년법 폐지에 동의했다.
과연 더욱 엄중한 처벌은 효과가 있을까. 실제로 2007년 말 소년법은 한 차례의 개정이 있었다. 소년범죄의 저연령화에 대응하기 위해 보호처분 대상 연령을 만 12세에서 10세로 낮추었고, 소년법 적용 상한 연령도 20세에서 19세 미만으로 낮아졌다. 그러나 결과는 재범률의 증가로 돌아왔다. 전과가 있는 청소년의 재범률은 51.4%이며 이 수치는 지속해서 높아졌다. 특히 전과 4범 이상의 소년범 비율은 2009년 8.9%에서 2013년 15.6%로 두 배가량 증가했다. 또 2011년에도 대구에서 일어난 학교폭력으로 인한 자살 사건 이후 학교전담경찰관 배치, 학교폭력 실태조사 등 정부와 경찰은 학교폭력에 대한 수많은 대책을 쏟아냈다. 그러나 그 효과는 여전히 미미하다. 언론에서 학교폭력 실태가 보도되지 않았을 뿐, 그 이후에도 학교폭력의 잔혹성은 점점 더해갔다. 소년법 폐지나 개정이 능사가 아님은 이미 여러 차례 입증된 결과이다.
현재 일어나는 청소년 폭행 범죄에는 공통점이 있다. 아이들은 폭행을 저지른 후 그것을 친구들에게 혹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자랑한다는 것이다. 소년원생들은 이러한 행동이 모두 관심을 받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또 가해 학생들의 대다수는 가정에 문제가 있는 경우라고 한다.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시기에 그것이 결여되면 또래 집단에서라도 인정을 받고자 하는 욕망이 생기고, 그 집단 내에서만 고립되다 보니 잘못된 길로 접어들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결국 이 문제의 본질은 아이들이 어떤 가치에 따라 살 것인지 그 토대를 제공하지 못하고 아이들을 따뜻하게 공동체의 일원으로 품어주지 못했던 가정, 학교, 사회에 있다. 오로지 좋은 성적을 받아야만 칭찬을 받고 인정을 해주는 사회에서 경쟁은 이미 생존의 방식이 되었고, 그 생존에서 낙오되면 패배감에 무기력해진다. 청소년, 그 뜨겁고 열렬한 생의 기운으로 가득 찬 아이들이 그 무기력을 뚫기 위해 선택한 것이 폭력적인 일탈이 아닐까. 아이들이 그러한 방법을 선택한 것은 결국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 선하고 아름답고 좋은 것을 추구하기보다, 더 악랄하고 자극적인 것들에 열광하는 우리 시대의 모습인 것이다.
솔로몬 제도에는 최대 지름 2.5㎞도 채 안 되는 작은 섬 아누타가 있다. 그 섬을 지배하는 가치는 ‘아로파’다. ‘실천하는 사랑’이라는 뜻을 가진 아로파는, 생존을 위한 법칙이다. 사람이 살기에 척박한 환경에서 서로 견제하고 경쟁하며 살아가다 4명의 남자만이 살아남았던 지난 역사에서 깨우친 공생의 원칙이 아로파이기 때문이다. 서로 나누고 돕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 나만 살고자 하는 것은 결국 공멸을 가져올 뿐이다. 그들이 우리가 보기에 이상하리만큼 서로를 위하고 나누는 이유는 살아남기 위함이다.
이 원칙은 아누타섬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공생의 가치, 공동체적 가치를 회복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 반복되는 폭력의 고리를 끊지 못할 것이다. 여중생 폭행 사건 가해자들의 죄는 무겁지만, 그 아이들의 잘못으로만 간단히 해결하고 끝내려고 한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고통받고 있는 잠재적 가해자들을 구해낼 수 없다. 우리 사회가 어떤 아이들에게 관심의 눈길을 주고 있는지, 과연 아이들에게 말 걸고 손 내밀고 있는지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 그러한 우리 사회의 모습을 직시하지 못한다면, 소년법 폐지는 우리 사회 더 큰 악으로 돌아올 것이다.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가치가 무엇이 되게 할 것인가. 그 고민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소년법 폐지는 우리 사회 더 큰 악으로 돌아올 것이다.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가치가 무엇이 되게 할 것인가. 그 고민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인디고잉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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