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추석 황금연휴를 앞두고 부산항에는 비상이 걸린 적이 있다. 장장 10일간 이어지는 연휴 돌입 직전인 지난달 28일 ‘살인 개미’로 알려진 맹독성 붉은불개미가 부산항 감만부두에서 발견돼 검역당국이 한바탕 소동을 벌였다. 국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이 개미는 치명적인 독성이 있어 ‘붉은독개미(Red imported fire ant)’라는 악명까지 가졌다. 추석 연휴 내내 진행된 이번 살인 개미 소동은 이제 잦아들었다.
감만부두(배후지역 포함)를 비롯해 내륙컨테이너기지 등 전국 34개 주요 항만을 대상으로 진행된 정부의 합동 조사에서 붉은불개미는 추가 발견되지 않았고, 강한 번식력을 자랑하는 여왕개미도 이미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는 잠정 결론이 났다. 정부는 지난 10일 부산항 감만부두에 대해 발견 지점 반경 100m 이내 컨테이너는 전량 소독 후 반출하도록 하고, 그 밖에 지역에는 소독 절차 없이 반출을 허용했다.
이로써 장기 연휴 기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이슈 중 하나였던 부산항 붉은불개미 습격소동이 깔끔하게 마무리됐으면 좋겠다. 더욱이 방역당국과 동북아시아 물류 중심기지로 재도약 중인 부산항 관계자들은 이번 소동을 통해 귀중한 교훈을 새겼으면 한다.
붉은불개미는 호전적이고 찔리면 매우 아픈 침을 지니고 있다. 이들 개미는 사람의 다리를 기어오르며 일종의 ‘인해전술’ 형태로 공격한다. 개미들은 페로몬 신호를 기다린 후 일제히 침을 쏘아댄다. 해당 지역 개미들을 상대로 경쟁해 승리하고 이들의 둥지는 식물의 뿌리까지 약하게 한다니 가공할 위력을 지닌 침입종이다. 정부는 북미에서 한 해 평균 8만 명 이상 붉은불개미에 쏘이고 100여 명이 사망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실제 북미에서는 적극적으로 이 종을 없애려고 하지만, 개미는 서식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이 점에서 국내 상륙한 여왕개미가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지만, 방역당국은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물론 외래 붉은불개미가 인체에 미치는 위험 정도가 심하게 과장됐다. 붉은불개미가 발견된 감만부두에서 처음부터 정부 합동조사에 참여한 상지대 류동표(산림과학과) 교수는 “사람이 꿀벌에 쏘였을 때 과민반응을 일으키는 정도를 1이라고 가정하면 붉은불개미의 독은 0.2 이하로 극히 약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는 또 “100명이 사망했다는 건 연간이 아닌 총집계 수이고, 실제 치사율은 물린 사람의 2% 이하”라고 역설했다. 전문가의 진단인 만큼 분명 수긍할 만한 내용이다. 정부도 “북미에서 한 해 평균 100명 사망한다는 것은 일본 자료를 잘못 인용한 탓”이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우리는 꿀벌보다 위험이 덜한 ‘개미 출현’에 호들갑을 떨었단 말인가.
하지만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 있다. 외래종의 국내 최대 항만 습격소동의 위험성이 일부 과장된 감이 없지는 않지만, 국내 서식 자체를 원천 봉쇄하는 노력이 꾸준히 진행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동안 우리는 유해한 외래종의 국내 습격을 수수방관하다 뒤늦게 후회한 경험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붉은불개미는 인체 위험은 작지만, 생태계 교란 우려가 크다는 점은 전문가도 인정하고 있다.
당국은 앞으로 최소 2년간 부두 전체에 대한 예찰 조사를 하고, 전국 34개 주요 항만에 대해서는 주 2회 이상 예찰 조사를 계속할 예정이다. 환경부 주관으로 부처 간 공동협의체를 구성하는 등 제도개선도 추진하고, 붉은불개미 분포국가 중 우리나라와 교역량이 많은 중국 일본 등의 수입물품에 대해서는 검사 비중을 확대한다고 한다. 당연한 조치다.
이번 사건은 시간이 지나면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질 게 뻔하다. 이에 편승해 관계 당국도 예전처럼 요란만 떨다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외래종 유입 사건을 망각해 버릴까 두렵다. 외래종의 국내 유입이 단 한 번이라도 뚫린다면 그 피해 정도는 상상 이상이다. 더구나 검역당국이 이번 붉은불개미의 국내 유입 경로를 명확히 밝히지 못했다는 것도 영 뒷맛이 개운치 않다. 검역본부는 1차 유전자 조사 결과 부산항의 붉은불개미가 미국에 분포하는 붉은불개미 개체군과 같은 모계(母系)의 유전자형을 가진 것으로 파악한 정도다.
그러니 중국을 비롯해 유럽 각국과 일본, 대만, 미국, 호주, 말레이시아 등 전 세계로 연결하는 물류 흐름의 대한민국 심장부인 부산항을 관리하는 관계자들은 긴장의 끈을 더욱 바짝 죄어야 한다. 과거 산업화시대 부산항을 통해 목재와 기계류 등이 오갈 때 외래곤충들이 이에 묻어 무방비로 국내 유입된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번 소동이 장기화했다면 부산항 물류 흐름은 뚝 끊기고, 이후 부정적인 연쇄 파급효과는 예상 밖으로 컸을 것이 확실하다. 부산항 파수꾼들의 부릅뜬 감시의 눈이 더욱 절실하다.
편집국 부국장 겸 뉴미디어본부장 choonjin@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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