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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건 칼럼] 개헌 논의가 수상하다

국회 특위 일정 발표 불구, 아직도 진척 지지부진에 홍 대표는 반대 입장까지

개헌에 정략적 접근 세력, 지방선거 때 심판받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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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은 ‘개헌은 블랙홀’이라는 말을 유달리 자주 썼다. 그가 한나라당 대표 시절인 2007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4년 중임제 원포인트 개헌을 제안할 때도 그랬다. 노 전 대통령을 “참 나쁜 대통령이다. 대통령 눈에는 선거밖에 안 보이느냐”라고 비난하며 “선거가 일년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 개헌 논의를 하면 블랙홀처럼 모든 문제가 빨려들어갈 수 있다”고 언급했다. 대통령 당선 이후에도 2014년 신년 기자회견, 그해 10월 수석비서관 회의, 2016년 1월 대국민담화 등에서 수시로 블랙홀에 비유하며 개헌 논의를 차단했다.

하지만 누구보다 개헌 논의를 블랙홀처럼 이용하려 했던 사람이 박 전 대통령이다. 그는 지난해 10월 24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개헌을 전격 제안했다. 종전 입장을 번복하는 뜬금없는 제안의 의도는 곧바로 밝혀졌다. 시정연설 당일 저녁 ‘최순실 태블릿PC’ 보도가 터졌다. 이 보도로 다가올 후폭풍을 차단하기 위한 국면전환용으로 개헌 카드를 던진 것이다. 하지만 정작 개헌이 아니라 최순실 게이트가 블랙홀이 되면서 목적은 수포로 돌아갔다. 박 전 대통령 스스로 개헌을 정략적 카드로 활용한 것이다.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지적하며 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개헌은 물거품으로 끝났다. 대통령 임기 말 정략적 목적으로 개헌 카드를 활용한 탓이다. 그래선지 지난 5월 대선에서 여야 주요 정당 후보들은 모두 내년 6월 지방선거 때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공약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선 이후에도 내년 개헌을 공식화했다. 대통령 임기 초 개헌을 마무리하자는 여야 공감대가 처음으로 형성됐다. 내년 개헌에 대한 여론조사에서도 국민의 78.4%, 국회의원의 88.8%가 찬성했다.

지난 1월 출범한 국회 개헌특위도 최근 구체적인 일정까지 마련했다. 내년 2월까지 개헌안을 마련해 5월 24일까지 국회 본회의 의결을 거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물론 개헌특위가 만족할 만한 개헌안을 만들어 내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남아 있다. 시간이 촉박한 데다 권력 개편안 등 구체적인 부분에서 여전히 이견이 큰 탓이다. 애초부터 쉬운 일이 아니었던 만큼 이 정도의 입장 차이가 없을 수는 없다. 어쨌든 국민적 여론이나 정치 상황으로 미뤄 더없는 호기를 만난 셈이다.
그런데 이 정도 유례 없는 분위기라면 속도를 내야 할 개헌 논의가 심상찮게 흘러가고 있다. 새 정부 초기라 이런저런 쟁점이 많다 하더라도 다른 관심사를 잠재우는 블랙홀은커녕 좀체 개헌 분위기가 떠오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제1 야당인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대표는 내년 개헌에 제동을 거는 데 군불을 때고 있다. 그는 최근 “개헌은 대선보다 더 중요한 국가지대사인 만큼 충분한 논의를 거쳐야 한다”며 내년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일정에 반대 입장을 공식화했다. 지난 대선 때 스스로의 공약마저 뒤집은 것이다.

홍 대표가 종전의 입장을 번복한 배경을 짐작하긴 어렵지 않다. 내년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실시하면 선거에 불리하리라는 계산이다. 홍 대표의 말대로라면 ‘중요한 국가대사인 개헌’보다 지방선거 승리가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박 전 한나라당 대표가 노 전 대통령의 원포인트 개헌 제안에 “선거밖에 안 보이느냐”라고 비난한 대목을 생각게 한다. 개헌을 정략적 카드로 활용한 과거 대통령과 정략적 목적으로 개헌 공약을 번복한 홍 대표가 과연 뭐가 다른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국회 개헌특위가 내년 개헌을 위한 구체적 로드맵까지 마련한 마당이다. 개헌특위에는 제1 야당인 자유한국당도 참가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자유한국당 대표가 개헌특위 일정 진행에 훼방을 놓는 모양새다. 그렇지 않아도 개헌 관련 쟁점 총 11개 분야 62개 중 여야 특위 의원들이 대체로 합의한 항목은 30개가 채 되지 않는다. 모든 항목에 의견이 같을 수는 없겠지만 할 일이 산더미인 것이다. 홍 대표의 내년 개헌 반대 입장은 결국 특위 동력을 크게 떨어뜨릴 가능성이 높다. 자당 대표가 반대하는 개헌에 어느 의원이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겠나.

그러나 지방에도 더없는 호기인 이번 개헌 만큼은 무위로 끝나게 할 수는 없다. 새 정부가 지방분권 개헌에 과거 어느 정부보다 적극적 의지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광역지자체 또한 지방분권 개헌을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또다시 중앙 정치권의 정략적 목적에 흔들리거나 권력구조 개편 논쟁에 매몰돼 개헌이 물 건너 가는 일은 결단코 막아야 한다. 정치권에만 맡길 게 아니라 지방이 두 눈 부릅뜨고 개헌 논의에 불을 지펴야 하는 이유다. 내년 지방선거는 개헌에 정략적으로 접근하는 세력에 대한 심판의 장이 돼야 한다.

논설실장 jjk@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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