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부터 사흘간 ‘부산의 책마을’로 불리는 부산 중구 보수동 책방골목에서 책문화 축제가 열린다는 소식이 들리는 것을 보니 바야흐로 ‘독서의 계절’인가 보다. 이번 주말은 보수동으로 가을 나들이를 해야겠다는 생각만으로도 마음 한구석이 푸근해진다.

보수동 책방골목은 어떤 곳인가. 1945년 해방 직후부터 1950년 한국전쟁기를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돼 전국에서 몰려온 피란 지식인과 학생 문인 예술인들의 ‘지식 보물창고’이자 지혜의 샘 역할을 했던 곳이 아닌가. 전후 복구 시기에는 향학열에 불 탔지만, 가난했던 고학생들의 발걸음과 숨결이 골목을 메웠다. 그리고 서가에 선 채로 책을 읽던 학생들의 얇은 주머니 사정을 눈치 챈 서점 주인이 슬쩍 그 책을 들어 책가방 속에 찔러넣어 주기도 했던 인정 어린 장면과 추억이 묻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나이만 따져도 이제 갓 40살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세계적인 책 마을로 명성을 얻고 있는 영국 ‘헤이 온 와이’ 마을의 ‘큰형님’ 격이다.

그런 와중에 최근 본지 지면(지난 12일 자 21면)을 통해 보도된 ‘온라인 서점 오프라인으로 진격하다’라는 기사 내용을 생각하자면 마음이 썩 한가하지만은 않다. 알라딘, 예스24 등 유명 온라인 서점들이 부산에 개설한 오프라인 중고서점이 어느새 7곳에 달하며 그 중 5곳이 올해 문을 열었다고 한다.

이 소식을 접하자마자 ‘아, 보수동은 어쩌지?’ 하는 걱정이 들었다. 자본주의 경제 관념으로는 대형 온라인 서점의 시장 진입을 막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고, 오히려 환영하는 이들도 없지 않기에 함부로 비판하기조차 조심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보수동 책방골목에서 ‘부산스러운’ 도시 문화의 원형을 찾는 시민이라면 누구라도 비슷한 염려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들 인터넷 서점의 지역 중고서점 매장 개설 열풍은 말 그대로 ‘공습’, 즉 ‘공룡들의 습격’ 수준이다. 가격 할인혜택과 빠른 배송 등을 앞세워 기존 동네책방 시장을 사실상 고사시킨 지 10여 년 만에 중고책 시장까지 싹쓸이하겠다는 기세로 달려드는 장면은 대기업 프랜차이즈 제과점들이 동네의 골목 빵집을 고사시킨 장면과 오버랩된다.

대자본의 힘은 막강해서 규모나 고급스러운 인테리어 등 여러 측면에서 기존의 중고서점과는 비교가 힘들 정도다. 대부분 수백 평 규모인 부산의 7곳 중 한 곳은 면적만 2000㎡(약 600평)에 달해 전국 최대라고 한다. 규모뿐인가. 분야별 도서 분류와 서가 배치, 온라인 서점과 연동해 책이 꽂힌 위치까지 알려주는 첨단 검색시스템 등 이용자 편의성에서는 지역 서점이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다. 지역 서점업계에서는 대기업으로 분류된 인터넷 서점들이 종소기업 적합 업종인 신간 서점 부분 진출이 안 되니까 일단 사각지대인 중고서점으로 발을 내딛은 후 2019년께 규제가 풀리면 신간 서점으로 영역을 확장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정말로 보수동은 어떻게 해야 ‘공습’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사실 지난 10여 년간 적잖은 자발적 노력이 있었다. 1960·70년대 70여 곳에 달했던 서점 수도 절반 정도로 줄었지만,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한 책문화 축제가 올해로 14회째를 맞았다. ‘보수동 책방골목 통합 인터넷 쇼핑몰(http://www.bosubookstreet.com)’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역시 서점업주들의 힘만으로는 ‘공룡들의 습격’을 막아내기엔 역부족으로 보인다. 해답은 결국 시민들의 사랑으로 귀결된다. 법령을 고쳐 제도적 보호장치를 마련한다 해도 시민들이 외면하면 보수동은 갈수록 위축될 수밖에 없다.

하나 무조건적인 시민 사랑에만 매달릴 수는 없는 노릇. 부산시와 해당 지자체, 시민사회가 골목의 주인장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찾아야 한다. 다른 곳에서는 맛볼 수 없는, 인터넷 홈페이지의 편리한 검색 기능만으로는 도저히 흉내조차 내기 힘든 ‘보수동만의 특별한 맛’을 우려내야 한다.

그리고 시민 입장에서는 우선 이번 주말 책문화 축제 현장을 찾아가 보는 것에서부터 보수동에 대한 애정을 표현해볼 만하다. 한 시인의 말처럼 자주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러운 법이다.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