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에서 공개된 지난해 345㎸ 이상 초고압 송전선로 설치 자료는 지방 차별의 전형적인 사례로 꼽을 만하다. 서울의 경우 2만7108ｍ의 해당 선로가 설치돼 있지만 지상에선 선로를 볼 수 없다. 모두 땅속에 매설(지중화)했기 때문이다. 반면, 경남 경북 전남 충남 충북 강원 대전 광주 대구 세종 등은 지중화 비율이 제로다. 울산과 전북도 각각 0.27%와 0.60%로 미미한 것은 물론, 부산(29.96%) 경기(27.31%) 인천(46.89%) 역시 50%에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남 밀양의 송전선로 설치 갈등 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곳은 주민 2명이 765㎸ 송전선로 가설에 반대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고, 67명이 재판에 넘겨져 처벌받은 데다 150여 가구가 12년째 보상을 거부하며 싸우고 있다. 밀양의 악몽은 경북 청도·청송, 충남 당진, 전북 군산 등 초고압 송전선로 지중화율이 제로이거나 미미한 지방에서도 되풀이되고 있다. 가장 많은 전력을 소비하면서 전력 생산량은 가장 적은 서울에 송전하기 위한 고통을 지방민이 고스란히 떠안고 있는 것이다. 이러니 지방민은 ‘2등 국민’, 지방은 ‘서울의 식민지’라는 비판이 어찌 나오지 않겠는가.

부산과 울산의 단위면적(㎢)당 초고압 송전선로 길이가 각각 202ｍ와 139ｍ로 전국 시·도 중 1, 2위를 차지한 것도 문제다. 이는 두 곳이 송전선로 설치가 필요한 원전 밀집도가 세계 최고인 것과 무관치 않다. 서울은 부산의 5분의 1 수준인 45ｍ에 불과하다. 서울이 100% 지중화된 것을 감안하면, 부산과 울산의 단위면적당 송전선로 길이는 각각 서울의 141배와 139배에 달한다.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지방의 초고압 송전선로 지중화율을 높여야 하는 건 당연하다. 이 밖에 발전소와 송전선로가 많은 지방의 전기료를 적은 곳보다 줄여주는 차등제 실시 등 대책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대책만으로는 미흡하다. 내년에 개정될 헌법에 에너지 시설을 포함한 서울과 지방의 평등권 보장을 꼭 명시하는 근원적인 해결책이 절실하다. 에너지 수급 체계는 전 국민이 권리와 의무를 균분하는 것을 전제로 새롭게 수립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