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크의 소설 ‘고리오 영감’ 속에서는 두 인물이 대결한다. 라스티냐크는 늘 흔들리기는 하지만,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도 선해야 한다는 소신을 견지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보트랭은 목적을 위해서라면 악한 선택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고 그를 유혹한다.

성공과 양심 사이에서 갈등하다 인간다움을 선택하는 라스티냐크에게 보트랭은 ‘당신 같은 사람과 닮아 있을 때 인간은 신(神)인 것이고, 그럴 경우 인간은 가죽으로 덮인 하나의 기계’가 아니라 아름다운 감정들이 약동하는 무대가 되는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아름다운 사람들이 어우러지는 무대를 찾아내기는 어렵다. 돈이라는 흉물 때문이다. 요즘 뉴스에는 돈 때문에 살인까지 저질렀다는 사건들이 즐비하다.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살충제 계란 파동도 결국 돈이 원흉이었다.

‘고리오 영감’의 배경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 나폴레옹 제정의 몰락, 왕정복고기의 혼란 속에 놓인 프랑스 파리이다. 발자크 문학의 가치는 아수라장 속에서도 억울하게 당하는 약자의 모습을 보면서 현실의 야비함을 꿰뚫어 본 데에 있다. 예나 지금이나 돈의 논리로 돌아가는 세상의 약자들이란 가진 자에 의해 희생당하는 삶을 감당해야만 한다.

어느 소설에서나 등장인물들은 자신의 욕망 앞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보인다. 치명적인 악재 앞에서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착한 인간으로 살아가기는 만만치 않다. 예수와 유다의 모델이 같았던 것도 참혹한 시련의 터널을 빠져나온 이가 선한 본성을 잃지 않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야수와 싸우고 나면 야수가 된다는 것이 생의 난관을 극복해낸 이에게 남겨진 가장 슬픈 후유증이다.

고리오 영감의 시대로부터 어언 200년이 지난 지금 이 순간의 삶도 그렇다. 여전히 돈과 권력에 휘둘린 아수라장이다. 재물을 넉넉하게 가진 자들은 다른 건 몰라도 삼시 세끼 걱정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은 세상이 요구하는 것을 지불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시간을 바친다. 오직 연명만 하고 있으니 가장 저렴한 것만을 구매하기 위해 고심하고 또 고심하며 어렵게 선택한다. 값싸게 구매한 살충제 계란들은 그들의 식탁을 점령했다. 믿을 만한 환경에서 닭들을 풀어놓고 키웠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 상품들은 적어도 살충제 계란의 세 배가 넘는 가격에 팔리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줄은 알지만 돈이 나갈 곳이 너무 많으니 비싼 식품들은 구매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가난한 구매자가 착한 선택을 하기는 정말 어렵다. 가격에 덜 휘둘리면서 가치 있는 선택을 해야 하건만 우리는 늘 눈앞의 편리함과 자신의 손익을 따지기에 급급할 뿐이다. 마음이 편치 않으니 어쩔 수 없었지 않았냐고 자신을 위로만 한다.

생산자 역시 다르지 않다. 돈과 도덕성 앞에서 갈등할 수밖에 없다. 아니 선택의 여지 없이 돈을 향해 내달린다. 그러나 사람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 자신의 유익을 덜 취하며 정성을 다해 생산했음에도 소비자들이 알아주지 않을 때는 우울하고 슬프다. 독극물 수준의 경쟁 상품은 싸다는 이유로 환대받으나 상대적으로 소외된 그들이 감내해야 하는 시간은 만만치 않다. 그들의 소외는 바로 끊어진 밥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 고단함이 주는 늪과 같은 박탈감에 대해서라면 나도 조금은 안다. 녹록지 않은 삶이었지만, 먹는 것에 관한 한 계산을 할 수가 없었다. 싸다는 이유로 잘못 먹였다가는 아픈 아이라 생명을 잃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가계부에 기록된 숫자들은 높아도 너무 높은 엥겔 계수를 지켜내었고 먹는 것 외에는 거의 지출을 하지 않고 살았음을 증명하고 있다. 사교육비 지출은 꿈꿀 수조차 없었고 옷이나 신발은 항상 이십 년은 기본적으로 입고 신었기에 바늘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파마와 커트 또한 약을 사서 내 손으로 직접 했기에 나의 모습이 타인에게 어떻게 비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오래전에 떨쳐내었다. 다만 소비자로서의 자부심은 있었다. 공들여 농사 지은 농부와 착한 생산자에 대한 예의는 어느 정도 갖추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착한 생산자들 또한 그들의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일한다. 돈에 눈먼 자들이 살충제를 뿌려댈 때 그래도 양심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자들이 있다면 소비자는 예를 갖추어야 한다. 국가 또한 철저한 검수 시스템을 마련하여 엥겔계수를 높이지 않고도 믿고 먹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직접 소를 키워왔고 항상 눈앞에서 도살되는 고기만을 먹었던 사람들에게는 광우병 사태도 강 건너 불이었다. 착한 생산자들에 대한 예의는 국가의 엄격한 검수 시스템에서 가장 먼저 차려져야 한다. 촛불 행군이 만들어낸 많은 변화처럼 국민의 의식이 달라지면 세상도 차츰 달라져 간다. 다행히 착한 생산자들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희망 또한 멀지 않은 곳에 분명히 있다.

동의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