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식구들과 통영에 다녀왔다. 이미 여러 번 다녀온 통영이지만 외지에 사는 아들, 며느리가 안 가본 곳이기도 하여 식구들이 원하는 케이블카니 루지니 하는 것들은 다 포기시키고 필자 뜻대로 박경리문학관, 전혁림미술관, 청마문학관, 윤이상 음악관, 동피랑, 조각예술공원 등을 2박3일간 둘러봤다. 박경리 선생이 돌아가셨을 때 통영 노제에서 만나자는 사위인 김지하 선생과의 면담 약속으로 통영을 다녀온 이후로는 매년 통영을 들르고 박경리 문학관을 다녀온다. 올해 들른 박경리 문학관에서는 문학관 운영에 대하여 통영시에서 파견된 관리인들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면서 부산의 문학관들을 떠올렸다.

한국의 나폴리라 불리는 문화도시 통영의 문학관들은 시에서 운영하고 있다. 문학관의 규모와 운영이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도록 짜여 있어서 우리나라 제2의 도시인 부산의 문학관 운영실태와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산국제영화제와 광안리 불꽃축제로 지칭되는 부산의 대표문화행사에 비하여 시에서 외면되는 부산의 3대 문학관의 현실이 안타깝게 여겨지는 연휴였다.

부산에는 요산 김정한문학관, 향파 이주홍문학관, 김성종 추리문학관인 3개의 문학관이 있으며 세 문학관 모두 사단법인이나 개인이 운영하고 있다. 해운대 추리문학관은 김성종 소설가의 사비로 건립되었고, 요산문학관과 향파 문학관은 노무현 정부 시절 시가 재정을 투입해 세웠다. 현재 운영을 살펴보면 추리문학관은 김성종 소설가 개인이, 향파 문학관은 가족과 지인에 의해, 요산 문학관은 부산작가회의의 작가들로 구성된 요산기념사업회에서 운영하고 있다. 세 문학관 모두 시가 일 년에 2000만 원의 도서구입비와 3000만 원의 축전지원비를 보조하며 이는 건립된 지 15년이 지나도 증액되지 않고 있다. 운영 필수 요인인 건물유지와 직원 임금에는 턱없이 모자라서 수년째 부산시에 지원비 증액요청을 하였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무산되고 있다.

통영의 박경리, 청마문학관과 울주군의 오영수 문학관, 경주의 목월문학관 등은 모두 해당 자치단체에서 매년 수억 원의 예산을 주고 관리 직원도 충당해준다. 부산시 지원금 증액의 무산 이유로 시와 의회에서 이야기되는 법령문제는 결국 시와 의회의 문학관에 대한 편견과 몰이해에서 비롯된다고 하겠다.

양극화가 심화되고 중심지향주의의 자본주의 사회의 그늘 속에서는 언제나 소외당하고 고통받는 계층이 존재한다. 이 변두리 소외계층을 인류 전체의 삶으로 끌어들이도록 말해주는 첫걸음이 문학이다. 더불어 살아야 하는 사회구조 속에서 소통과 배려를 이야기하고 이기적 욕망에 좌우되는 개인주의적 삶보다는 이타주의적 삶이 인류가 지향하는 보편적 삶이 되도록 말해주는 것도 문학이다. 불꽃 축제와 영화제로 대변되는 부산의 문화축제가 가지는 대중성과 위상도 중요하지만 경계와 변두리의 삶이 중심지향적 삶을 언제나 받치고 둘러싸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문학의 힘을 부산시·의회 담당자들이 이 가을에 느끼길 바란다. 통영문학관에는 다음과 같은 박경리 선생님의 글이 벽에 걸려 있다. “살아 있는 것들의 생명은 다 아름답습니다. 생명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것이 능동적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물질로 가득 차 있습니다. 피동적인 것은 물질의 속성이요 능동적인 것은 생명의 속성입니다.” 이번 가을엔 많은 시민이 부산의 3대 문학관을 들려주길 바라본다. 부산시와 시민들의 능동적인 관심만이 부산 3대 문학관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다. 매년 광안리 불꽃축제를 보면서 이렇게 되뇌어 본다. “저 불꽃 2, 3발이면 부산의 문학관 한 곳이 운영될 수 있는데.”

동아대병원 교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