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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건 칼럼] 과연 과학이 공포를 이겼나

신고리 재개 권고 두고 ‘원전 안전성 입증’ 주장

공론조사 의미 크지만 과학적으로 무오류라는 확대평가는 경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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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놀랄 만한 의외의 결과였다. 19% 포인트라는 압도적 차이로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재개를 권고한 공론화위원회 시민참여단의 결론이 기존 여론조사와는 너무나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그간 몇차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건설 재개와 중단의 차이는 오차범위인 4% 포인트 미만이었다. 더구나 공론화위 발표 직전의 여론조사에서는 중단 43.8%, 재개 43,2%로 차이가 불과 0.6% 포인트에 불과했다. 하지만 뚜껑을 열고보니 결론이 뒤집힌 것도 모자라 재개가 큰 폭으로 많았으니 이변이라고 할만도 했다.

새삼 여론조사에 거품이 있을 수 있음을 확인한 결론이다. 무엇보다 재개·중단 양측이 시민참여단을 상대로 자신들의 주장 근거를 내놓고 설득에 나서는 공론조사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당초 중단 쪽에 무게가 실렸던 초기의 조사 결과가 몇차례 공론조사와 토론 등을 거치며 점차 재개 쪽 의견이 많아진 게 이를 뒷받침한다. 공론조사 과정에서 재개 측 논리가 더욱 설득력이 있었다는 의미다. 재개 측이 원전 지식을 총동원해 ‘설득’한 반면 중단 측은 추상적 ‘주장’에 치우쳐 시민참여단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선지 이번 결론을 두고 원자력 전문가들은 ‘과학이 공포를 이겼다’고 환호했다. 일각에서는 ‘이성이 탈원전 환상을 막았다’고도 했다. 원전 안전에 대한 냉철한 과학적 설득이 감성에 매몰된 막연한 공포를 걷어냈다는 이야기다.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평가다. 공론조사를 거칠수록 시민참여단의 표심이 재개 쪽으로 쏠려갔으니 완벽한 승리라고 할 만하다. 실제 시민참여단 참가자 상당수가 숙의 과정에서 원전이 생각보다 안전하다는 새로운 정보가 마지막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밝히기도 했다.

다만, 원전 안전에 대한 새로운 정보만이 재개 쪽으로 마음을 기울게 한 요인이었는지는 의문이다. 재개 측은 안전 문제 외에도 경제적 측면을 강조했다. 이미 3분의1가량 지어진 원전 건설을 중단할 경우 국가경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숫자의 힘은 강하다. 2조 원이 훌쩍 넘는 매몰비용은 복잡하고 이해하기 힘든 원전 자체 문제보다 훨씬 현실적인 우려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어쩌면 과학보다 경제적 데이터가 시민참여단의 마음을 더 흔들었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과학이 공포를 이겼다’거나 ‘이성이 감성을 이겼다’는 평가는 너무 앞서간다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물론 가부를 묻는 투표에서의 승리 결과를 한마디로 표현하려는 수사(修辭)일 수 있다. 그러나 단순한 수사를 넘어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오만의 일단을 드러낸 것은 아닌지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는 게 사실이다. 건설 중단 측이 온통 비과학적이고 감성만으로 무장한 집단이라는 흑백논리로 접근하는 듯해서다. 게다가 재개·중단 여부와 별개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향후 원전을 축소해야 한다는 의견(53.2%)이 유지(35.5%)나 확대(9.7%) 의견보다 많았다. 이걸 두고도 과연 과학·이성이 공포·감성을 이겼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공론화위원회 구성 과정에서 건설 재개 측이 줄곧 전문가 배제를 문제 삼았던 것도 지나친 과학 만능주의다. 전문성이 없는 일반 시민에게 중차대한 국가정책인 원전 건설 여부 결정을 맡길 수 없고, 이는 오로지 과학의 영역이니 비전문가는 얼씬거리지 말라는 논리다. 그런 논리로 자칭 전문가에게만 내맡긴 결과가 원전에 대한 공포를 부른 사실을 그들은 애써 외면하고 있다. 게다가 건설 중단 측에도 엄연히 원전 전문가나 과학자는 있다. 재개 측의 과학만 과학이고 중단 측 과학이 사이비 과학일 수는 없다.

공포는 단 0.1%의 확률에서도 나온다. 100% 안전한 원전이 없듯이 100% 완벽한 과학이라는 것도 오만이다. 공론조사 과정에서 이런 공포를 상당 부분 걷어낸 것은 재개 측의 소중한 성과이고 그 노력을 충분히 인정할 만하다. 공포의 원인인 지진 등 천재지변까지 모두 감안해 설계했다는 설득이 주효했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과학은 무오류라는 독단은 위험하다. 독일의 학자 울리히 벡이 ‘위험사회’란 저서에서 ‘핵에너지는 기술발전에 복속된 무오류성을 따르는 위험천만한 게임’이라고 한 경고는 아직도 유효하다.

벌써부터 탈원전 정책을 수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원전을 둘러싼 논란은 과학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가치관과 선택의 문제이기도 하다. 새 정부의 탈원전 방향이 그렇듯 원전이 안전하다는 주장도 완벽하지는 않다. 안전과 관련한 공포가 과장됐을 수는 있어도 비과학적이라며 무시할 사안 또한 아니다. 신고리 공론조사 결과는 나름대로 의미가 크다. 다만, 과학의 승리를 입증했다는 식의 확대 평가 만큼은 경계해야 할 일이다.

논설실장 jjk@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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