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해운 시황이 여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외국의 초대형 선사들이 몸집 불리기에 다시 나서고 있다. 세계 1위인 머스크라인이 독일 함부르크수드를 40억 달러에 인수하였고, 세계 4위인 중국 선사 코스코가 7조 원에 홍콩 OOCL을 인수하는 등 ‘규모의 경제’ 실현을 위한 글로벌 선사들의 대규모 인수 합병(M&A) 활동이 올해 들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이에 더해 지난달 세계 3위 선사인 CMA-CGM도 세계 최대 규모인 2만2000TEU(1TEU는 길이 20피트, 높이 8피트, 폭 8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급의 초대형 컨테이너선 9척을 새롭게 발주하면서 선복량 경쟁에 다시 뛰어든 상황이다. 결과적으로 대규모 인수 합병 및 초대형선 발주를 통한 선대의 대형화는 개별 국가를 대표하는 국적 선사들의 생존은 물론 성장에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처럼 세계 해운업계 생존전략을 위한 움직임이 가파르게 진행되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국내 해운업의 현실은 어떤가. 유감스럽게도 국내 대표 선사인 현대상선의 선복량은 글로벌 선사로 생존이 가능한 100만 TEU 수준의 절반 규모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여전히 암울한 국내 상황이 현재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현실이다.

국내 해운업을 다시 살리고 초대형 국적 선사를 재건하기 위해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무엇일까? 우선 내년에 출범할 한국해양진흥공사와 기존 정책 금융 기관들은 국적 선사의 초대형 컨테이너선 발주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이를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여 집중적인 금융 지원을 진행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다만, 초대형 컨테이너선 확보에는 대규모 금융비용이 발생하며, 이로 인해서 장기간의 운영 적자를 선사가 계속 감당해야 할 우려가 크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 때문에 국적 선사의 운영 지속을 위한 막대한 공공 자금의 투입은 불가피하다는 점을 특별히 유념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국가 재정의 현실적인 한계상황을 고려한다면 국내 중소형 선사들에 대한 지원까지 정책 금융 기관들이 전부 부담하기에는 무리가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해당 선사들에 대한 지원은 민간 금융 기관이 맡는 식의 역할 분담이 절실하다는 판단을 할 수 있다.

해운 시황의 큰 변동성으로 인해 중소형 선사에 대한 금융 제공을 기피하고 있는 민간 금융권의 참여를 유인하기 위해서는 해운 공제 조합 제도의 추진을 적극적으로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여기서 유사한 사례 하나를 들어보자. 건설 공제 조합의 경우에는 국내 건설사들의 출자금으로 설립되어 현재 국내 중소 건설사 대부분이 공제 조합의 보증을 통해 시중 은행으로부터 건설 공사 수행 자금을 대출받고 있다. 마찬가지로 국내 선사들의 출자를 통해 해운 공제 조합이 설립된다면, 조합의 지급 보증을 바탕으로 국내 시중 은행들이 긴급 운영 자금을 가입 선사들에게 제공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물론 재무적으로 어려운 해운 업계 사정을 감안해 정부 및 정책 금융 기관 등이 초기에 공동 출자를 진행하는 방안도 조합 설립 준비 단계에서 충분히 고려될 수 있는 부분이다. 여기서 특별히 신경을 쓸 내용이 있다. 해당 선사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고 공제 조합의 재무적 건전성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조합 내부에 엄격한 보증 심사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해운 공제 조합 운영의 필수불가결한 전제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국내 해운산업의 재건을 위한 결론을 이렇게 내릴 수 있다. 위험성이 큰 투자를 지속해야 하는 국적 선사의 선대 확충은 장기 투자가 가능한 정책 금융 부문이 전담하고, 자금 지원의 효율성과 속도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는 민간 금융 분야가 공제 조합 보증과 연계해서 중소 선사를 지원하는 이원화 전략이 훨씬 더 효율적인 해운업 지원 방식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셈이다.

현재 전 세계 물류 분야의 선진국들은 전후방 연관 업종(선박 금융, 해운 중개 및 보험, 해운 법무, 선박 관리, 항만 하역)을 연계 발전시켜서 개별 국가 내 부가가치를 극대화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바로 이 같은 전략적 추진 과정에서 자국 국적의 초대형 원양 선사 보유 여부는 각 국가의 물류 경쟁력을 결정짓는 핵심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과제라는 점을 다시 한 번 더 강조한다. 민간 부문과 행정 분야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힘을 합쳐서 초대형 국적 선사를 보유한 해운 강국을 한시바삐 재건할 수 있도록 더한층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한국해양보증보험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