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으로 무척 쌀쌀하다. 도시 같으면 간편하게 기름보일러를 돌려 집을 데우련만, 시골집은 지난봄에 쓰다 남은 나무를 화목 보일러에 넣고 때다 보니 번거롭기 짝이 없다. 귀촌 초창기에는 뒷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구해, 도끼로 패고 전기톱으로 자르던 작업이 꽤나 낭만적이었건만, 이제 나도 시골에서 살 만큼 살았나 보다. 그래도 나무를 넉넉하게 때면 기름보일러보다 훨씬 화력도 좋을 뿐더러 운치가 있긴 하다. 불을 때는 중간 중간에 고구마 몇 개를 넣어 구워 먹을 수 있고, 타다만 장작을 꺼내어 고기 구워 먹을 때 밑불로 쓸 수 있으니 말이다.

얼마 전, 나같이 이 지역으로 들어온 소설가 몇 분과 처음으로 읍내에서 만나 술을 마셨다. 평소 얼굴이나 알고 서로의 소식을 듣긴 했으나 오프라인에서 만난 것은 처음이었다. 다행히 읍내에 도시의 뒷골목에나 있을 법한 허름한 술집이 있어 나를 비롯한 가난한 작가들에게는 안성맞춤이었다. 그 집은 묘하게도 내가 청년기에 자주 다녔던 주점과 흡사했는데, 그날도 안주 없이 국수와 탁주로만 배불리 먹을 수 있어 너무 좋았다.

요즈음은 시골식당도 도시화하여 고급스러워지고 가격이 비싼 곳이 많아, 함께 했던 작가들도 아예 이곳을 아지트로 삼자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러다가 다들 술이 불콰해지자 누군가 최근 TV에서 나온 예술인의 수입에 대해 입을 댔다. 상위 1%만이 전체 예술가들 수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대다수는 최저생계비에도 훨씬 못 미치는 수입으로 살아가는 그들의 현실에 이구동성으로 혀를 찼다. 다행히 그곳에 모인 작가 몇몇은 생업(창작) 외에 복지관 등에서 시간제 혹은 기간제로 근무를 하고 있어 사정은 낫지만 그래도 한철이었다. 그곳을 나오면 다시 허울 좋은 ‘전업 작가’가 되는 거였다. ‘그럼에도 우리만큼은 소설 쓰기의 끈을 놓지 말자’는 게 그날의 다짐이자 수확이었다.

그로부터 얼마 뒤, 아내가 작년 이맘때 읍내에 문을 연 친환경농산물 판매점인 ‘농부 애(愛 )곳간’의 일 년 품평회가 있었다. 도시에서 성실하게 직장생활만 하던 아내는 이곳으로 온 뒤, 모든 것을 접고 농사일과 판매점에 전념하고 있다. 아내는 도시에서 간호사이면서 한 남자의 아내로, 두 아이의 엄마로 몹시 바쁜 생활이었음에도 사십이 넘은 나이에 상담심리대학원을 마칠 정도로 꽤나 열심히 살았다. 그런데 그녀는 그토록 원하던 상담일을 할 수 있음에도 어느 날, 귀촌을 결정했고 결국 마음이 통하는 몇 분과 함께 읍내에 판매점을 연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점포를 개설할 때부터 여러 가지 도움을 주었던 ‘산청목화장터’ 회원들이 후원회를 결성하여 적극적으로 나섰지만 일 년 치 성과는 아내의 인건비도 채 못 건지는 실정이었다. 회의 도중, 어떤 분이 아내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추후, 이런 상태가 몇 년간 계속될 터인데 견딜 수 있느냐는 현실적인 질문이었다. 그러자 좌중의 침묵을 깨고 아내는 “수입은 적어도 지역 농민이 생산한 유기농농산물을 소비자와 함께 나누는 ‘곳간’만의 독특한 브랜드를 지켜나가겠다”고 당차게 되받았다. 그 말이 끝나자 자리를 지키고 있던 모든 사람은 박수를 쳤지만 나는 솔직히 그날 작가들의 모임이 떠오르면서 마음이 착잡했다.

소박한 삶과 친환경적인 생활을 위해 시골로 들어왔지만 우리에게는 아직 키워내야 할 자식이 있기 때문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와 나는 무거운 침묵을 지켰다. 그날 밤 나는 또다시 마당을 서성이며 생각에 잠겼다. 돈이 되지 않은 소설 쓰기와 마찬가지로 돈이 적게 되는 친환경농산물판매점 운영을 계속해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그럼에도 그날 성과보고 후 뒤풀이 때 나는 그동안 아내를 지탱해준 끈끈한 인간적 유대감에 희망을 보았다. 생면부지의 땅에서 낯설어하고 힘들어하던 그녀를 지켜주는 이는 남편인 내가 아니라 ‘목화장터’회원들이었다. 그리 생각되자 나는 순간, 아내에게 너무 부끄럽고 미안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제발 술 좀 그만 마시라’ 하는 아내의 잔소리가 지척에서 들리자 그런 마음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것은 비단 나뿐일까.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