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인구기금과 인구보건복지협회가 공동으로 발간한 ‘2017 세계인구현황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여성 1인당 평균 출산율(1.3명)은 세계 평균(2.5명)과 선진국 평균(1.7명)보다 현저히 낮다. 인구성장률 역시 지난해보다 0.1% 감소한 0.4%로 세계 인구성장률 1.2%에 훨씬 못 미친다. 저출산에 대한 정부 대책들이 전혀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객관적인 징표들이다.
약 반세기 전, 필자는 초등학교에서 약 3000만 명의 인구를 가진 남한은 유럽의 베네룩스 3국 및 대만과 함께 세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나라라고 배웠다. 당시에는 인구가 과밀하다 보니 산아 제한은 정부의 주요 정책이었다. 지금은 이 좁은 국토에 5000만 명 이상이 북적대는데도 오히려 저출산에 따른 인구 감소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혹자는 로마제국이 인구 감소로 멸망했다며 저출산을 국가 존망의 위기로까지 인식한다. 이런 작금의 상황이 필자에게는 생경하기조차 하다.
불과 20여 년 사이에 산아 제한에서 출산을 독려하는 사회로 변모하게 된 건 그만큼 한국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사회가 다원화되면서 자녀 양육의 즐거움 못지않게 자아실현을 통해 삶의 만족을 느낄 수 있는 대상들도 다양해지고 있다. 여성들의 사회적 역할이 강조되면서 성 역할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결혼의 제도와 가족의 형태까지 바꾸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결혼은 이제 필수가 아닌 선택의 문제가 되었다. 결혼을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겠다고 선택하는 것이다. 결혼은 하되 애는 낳지 않는 무자녀 가정도 늘고 있다. 애를 못 낳는 게 아니라 낳지 않겠다고 선택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만의 현상이 아니고 선진국에서는 이미 겪었거나 겪는 중이다.
적정 수준의 인구 구조를 유지하는 것은 국가의 존립에 필수적이므로 정부가 저출산을 걱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정부가 저출산을 걱정하는 이유는 주로 경제적 문제에 맞추어져 있다. 저출산으로 노동가능 인구가 줄고 고령화가 촉진되어 역삼각형 인구 구조가 되면, 노인의 부양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증가하고 사회의 역동성도 떨어진다는 것이다. 저출산 세대가 노인이 되어 역삼각형 인구 구조가 해소될 때까지 이런 상태는 수십 년간 지속되므로, 정부로서는 당연히 이에 대한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그동안 출산율 제고를 위해 막대한 재정을 투입했으나 별로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대책이 주로 세제 혜택이나 양육비 지원과 같은 미시적이고 표피적인 수단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출산에 대한 인센티브는 실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정책이다. 소득 수준이 높은 가정일수록 무자녀 비율이 높고, 대도시가 소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출산율이 낮다는 게 그 방증이다.
저출산 대책은 먼저 결혼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이유, 애를 낳고 싶어도 낳지 않는 이유, 대도시에서 출산율이 낮은 이유에 맞춰야 한다. 이들은 보육, 교육, 주거, 과도한 경쟁과 양극화, 일자리 등이 실타래처럼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사회적 문제들과 관련 있다. 따라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도 더욱 심층적이고 구조적인 접근을 통해 찾아야 한다. 결혼과 출산이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 되어버린 사회에서 육아로 얻는 행복감보다 육아로 인한 고통과 삶의 질 저하가 더 우려된다면, 누구나 자녀를 갖는 문제에 대해 주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다음으로 미혼모에 대한 낙인이나 편견을 해소하여 혼외 출산을 인정하고, 혈통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비혼자도 쉽게 자녀를 입양할 수 있게 하는 등의 다양한 가족 형태를 사회가 수용할 수 있도록 인식과 제도의 개선에 힘써야 한다. 저출산 문제를 해소하는 데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수많은 고아의 해외입양을 방조해서 고아 수출국이라는 오명을 받고 있는 우리 사회의 야누스적 행태는 지양되어야 한다. 출생 과정에 상관없이 모든 생명은 존재 그 자체로도 존귀하다.
정부가 저출산을 걱정하는 주된 이유가 생산가능인구의 감소에서 기인한다면, 해외 이민을 받아들이는 전향적인 대책도 적극적으로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이미 우리 사회는 타 민족과의 국제결혼이 일상화된 다문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지구촌에 살고 있는 다양한 민족도 따지고 보면 모두 같은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의 후예들이 아닌가.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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