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暗殺). 백번 양보하더라도 이 단어가 풍기는 섬뜩함은 피해볼 도리가 없다. 암살 사건은 동서고금의 역사서에 자주 등장한다. 중국 역사에서 심복이나 첩자에게 몰래 죽임을 당한 왕과 영웅호걸은 이루 열거하기조차 힘겹다. 서양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암살은 “브루투스 너마저…” 라는 말로 잘 알려진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죽음(BC 44년)일 것이다. 미국인이라면 1963년 11월 22일 댈러스에서 일어난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을 첫손에 꼽을지도 모르겠다.

서양에서 암살자를 뜻하는 단어는 영어로 ‘어쌔신(assassin)’, 이탈리아 및 포르투갈어로는 ‘아싸시노(assassino)’이다. 어쌔신이라고 하면 가수 겸 배우 비가 출연한 영화 ‘닌자 어쌔신’이나 스티븐 손드하임이 작사 작곡한 뮤지컬 ‘어쌔신’을 떠올릴 사람도 있겠다. 하지만 그 어원은 ‘하사신(hashashin)’에서 출발한다. 이 말은 ‘해시시(hashish)를 피우는 남자들’이라는 의미이다. 시오노 나나미의 책 ‘십자군 이야기’ 2권에 이들에 대한 설명이 있다. ‘하사신’은 십자군 원정 직전인 11세기 중·후반 현재의 시리아 북부 사막에 둘러싸인 산악지대 동굴을 근거지 삼아 생성된 암살자 집단이다. 이들은 이슬람 측이나 십자군 측 모두에게 공포의 대상이 됐는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약인 해시시를 피우고 작전에 나섰고, 실행 후에는 자살해버리니 배후가 드러날 일도 없었다. 이슬람 영웅 살라딘마저 자신의 침대에 놓인 이들의 경고장을 보고 두려움에 치를 떨었다고 한다.

‘하사신’의 특징은 또 있다. 암살 계획은 비밀리에 세우지만, 실행은 주로 공공장소에서 한다. 대중에게 자신들의 존재와 의도를 알리고 적들에게 공포감을 더하기 위한 것이다. 이 원칙은 현대 테러리즘의 원조 격이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뉴욕에서 발생, 8명의 사망자를 낸 트럭 테러 역시 운전자가 “알라는 위대하다”고 외쳤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지난 2월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VX(신경가스) 테러로 사망한 북한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도 비슷한 사례다. 그런 와중에 최근 김정남의 남겨진 아들 김한솔(22)까지 제거하려던 북한의 암살조 중 2명이 베이징에서 중국 공안에 체포됐다. 자살은 못 했다고 하니 그 배후가 드러날지 궁금하다. 어찌 됐든 이번 김한솔 암살조는 일단 “은밀하게 위대하게”라는 ‘하사신 원칙’에는 실패한 듯하다.

이승렬 논설위원 bungs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