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간 외교의 매개체 중 하나로 활용되는 게 골프다. 함께 라운딩하며 격의 없이 소통하고 우의를 다질 수 있어서다. 외교도 비즈니스이니 그럴 만하다. 골프 불모지였던 캄보디아의 훈센 총리는 단적인 사례를 보여줬다. 그는 20년 전 캄보디아의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가입을 앞두고 골프 연습에 열을 올렸다. 골프를 못하면 아세안 회원국 지도자들과 같이 어울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의 카를로스 메넴 전 대통령은 골프외교가 유별났다. 1995년 자국 투자 유치차 한국에 왔을 때 자신의 전담 골프코치를 대동할 정도였다. 그는 당시 우리나라 유력 재계인사들과 라운딩을 하면서 양국 간 경제협력의 분위기를 만들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일본 아베 총리는 골프를 매개로 훨씬 가까워졌다. 둘 다 골프광이니 더 그렇다. 아베는 그제 일본에 온 트럼프와의 두 번째 골프 회동에 대비해 보좌진과 연습 라운드까지 치렀다. 세계랭킹 4위의 일본인 프로골퍼도 그 회동에 불렀다. 트럼프의 환심을 사려는 모습이 역력하다. 하지만 일본 내에서도 지나친 트럼프 접대에 시선이 곱지만은 않은 거 같다.

외교의 수단으로 골프만 있는 게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오늘 국빈 방한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청와대 경내에서 산책하는 일정 등이 잡혀 있다. 골프를 하지 않는 문 대통령의 취미는 등산과 바둑. 특히 바둑은 아마 5단 수준으로 열렬팬이다. “과거 추자도 인근 무인도로 여행 갔을 때, 칠흑같이 어두운 밤 텐트 안에서 랜턴을 켜고 지인과 휴대용 바둑판으로 바둑을 뒀지요.” 5년 전 대선 후보 시절 바둑전문지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도 바둑광이다. 중국 기성(棋聖)인 녜웨이핑 9단과 오래전부터 친분이 두텁고, 바둑실력도 수준급이라고 한다. ‘균형외교’를 내세운 문 대통령으로서는 오는 10~11일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때 만나는 시 주석과 바둑외교도 펼칠 만하다. 12일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회동할 계획인 리커창 중국 총리도 바둑애호가이니, 더 그렇지 않나 싶다.

때마침 오는 11일 한중 대사와 바둑전설의 ‘페어바둑’ 이벤트가 눈길을 끈다. 주한 중국대사와 이창호 9단이 짝을 이루고, 주중 한국대사와 창하오 9단이 같은 팀으로 화상대국을 벌인다. 해빙 무드를 맞은 양국 사이에 바둑이 가교 역할을 하길 기대한다.

구시영 논설위원 ksyo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