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에서 개최한 소규모 답사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부산에서 만나다’라는 행사이다.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전태일 답사’를 따라가며 두 가지 의문이 들었다. 왜 다시 전태일인가? 그리고 왜 부산에서 전태일을 이야기해야 하는가이다.

고(故) 전태일은 1948년 대구에서 태어났으며 많은 시간을 서울에서 보냈다. 그의 전 생애를 놓고 보자면 부산과의 인연은 그리 길지 않다. 친동생 전태삼 씨의 회고담과 ‘전태일 평전’을 참조하면 전태일은 한국전쟁 발발 후 가족과 함께 부산에 머물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일 뿐, 그는 부친의 사업 실패로 인해 가족과 함께 서울로 상경한다. 전태일과 부산의 관계는 여기서 거의 끊어진 듯하다.

하지만 전태일은 다시 한 번 부산을 찾는다. 바로 1962년 여름이다. 12살 전후부터 가족의 생계를 떠안고 삼발이 행상을 하던 전태일이 부산으로 ‘가출’을 한 것이다. ‘소년 전태일’에게 부여된 생계의 책무가 너무 무거웠기 때문일까? 전태일은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살았던 부산으로 무작정 온다. 그러나 전태일의 ‘부산행’에 대해서는 거의 논의되지 않았으며, 또 회고담과 평전의 기억·기록 역시 착종되어 있는 부분이 존재한다.

몇 가지 사실만은 분명하게 정리할 수 있을 듯하다. 부산과 관련한 전태일의 기억·기록은 크게 두 가지라는 것. 먼저, 한국전쟁 시기 전태일이 유년시절을 보낸 장소가 ‘부산진역’ 근처라는 사실이다. 다음으로 1962년 여름 14살의 소년 전태일이 부산행을 감행했다는 점이다. 이를 실제로 확인하기 위해서, ‘전태일의 부산 발자취를 찾아가는 답사’가 꾸려진 셈이다.

전태삼 씨의 안내를 따라 답사 참가자들이 도착한 곳은 동구 좌천사거리 인근에 위치한 철거 지역이었다. 현재 도시환경 정비사업이 한창이라, 실제 전태일의 가족이 살았던 건물의 형상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겨우 집터만 발견할 수 있었다. 위로는 관문대로를, 옆으로는 가파른 철길을 두고 있는 전태일의 부산 집터는 위태로운 모습 그 자체였다. 더는 사람의 흔적과 자취를 발견할 수 없는 철거 현장의 한복판에서, 노동자의 인권과 불평등 개선을 외치며 스러져간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집터가, 그 흔한 표지석 하나 없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고 있었다.

그렇게, 황량하게 부서진 전태일의 부산 집터는 조각나고 찢어진 한국 노동(자)의 현실을 상징하는 듯했다. 지금도 여전히 ‘전태일’이라는 이름이 유효할 수 있다면, 그것은 ‘전태일’이라는 고유명사가 신화화되거나 우상화된 영웅적 형상이기 때문이 아니라, 누구나 차별받지 않고 평등하게 자기 노동의 가치를 존중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새롭게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즉, ‘전태일’이라는 이름은 급격한 산업화 과정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노동과 인권의 권리언어’ 그 자체인 셈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있다. 1962년 여름, 부산에 도착한 전태일은 자신이 살던 부산진역을 지나 무작정 영도를 향해 걷는다. 사흘을 굶은 전태일의 눈에 ‘누런 국화빵’이 들어온 것은 그때다. 빵을 굽는 주인은 16~17세로 보이는 단발머리 여학생이었다. 전태일은 너무 배가 고파서 그 여학생에게 동정을 구하고 싶었지만 여러 생각 끝에 그냥 지나친다. 그리고 영도다리 인근 바다 위에 ‘양배추의 속고갱이’가 떠 있는 것을 보고 바다로 뛰어드는데, 다행히 어부에게 구조되어 목숨을 건진다.

궁금한 것은, 사흘을 굶어 지칠 대로 지쳐버린, 심지어 바다에 떠 있는 양배추 조각을 건지기 위해 주저 없이 바다로 뛰어든 전태일은 왜 국화빵을 파는 여학생에게 동정을 구하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짐작하기 쉽지 않지만, 아마도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자존심이 아니었을까 싶다. 정말로 배고팠지만, 14세의 사춘기 소년 전태일은 차마 또래의 여학생에게 구걸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당장의 배고픔과 가난을 모면하고 해결하는 것보다 ‘인간의 존엄’이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을, 전태일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평화시장에서의 가혹한 노동 착취와 억압에 당당하게 맞설 수 있었던 힘이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그래서 ‘근로기준법을 지켜라’고 외치며, 자신의 몸을 불사른, 한 청년의 말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을 위한 권리 언어’로 기억되어야 한다.

이처럼 부산에서 만난 전태일은 지금도 우리에게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려준다.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전태일은 ‘노동 열사’가 분명하지만, 동시에 그는 ‘강력한 투사’이기에 앞서 조금 더 나은 삶, 조금 더 빛나는 인생을 살고 싶었던 평범한 청년이었다는 사실 역시 잊지 말아야겠다.

부산외대 한국어문화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