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의 험준한 지형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약 20억 년 전이고, 오랜 기간의 풍화·침식 현상으로 현재처럼 부드러운 모양을 갖게 된 것은 약 250만 년 전부터이다. 지리산 내부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약 2100년 전으로, 마한의 왕이 전쟁을 피해 달궁계곡에 들어왔다는 기록이 최초이다. 그 이후 장구한 세월 동안 많은 사람이 지리산을 피난처로, 은신처로, 수행처로 삼았고 지리산은 그들을 언제나 따듯하게 감싸주었다. 한편으로 지리산은 하나의 커다란 장애물로서 남해안을 침입한 왜적이 넘어서야 할 고지였으며, 우리 입장에서는 그들을 격퇴해야 할 방어선이었다. 따라서 지리산 주변은 늘 전쟁과 갈등, 애환이 뒤섞인 격동의 현장이었고, 이러한 역사 속에서 지리산은 많은 인물을 탄생시켰다. 신선이 되고자 했던 최치원, 백성들에게 옷을 입힌 문익점, 대쪽 같은 선비 남명 조식, 애국지사 황현, 온 국민이 존경했던 성철스님까지, 그분들의 족적이 오늘날 지리산의 정신이 되어 우리 후손들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일제강점기에서 한국전쟁과 1960년대의 사회 혼란기까지 약 50년간 지리산은 아픔의 역사를 겪었다. 호랑이와 반달가슴곰이 멸종에 이를 정도로 엄청난 자연 수탈이 있었고, 빨치산과 토벌대로 상징되는 민족 간 전쟁에 의한 자연파괴와 문화재 소실이 있었으며, 도처에서 자행된 마구잡이 벌목과 밀렵은 지리산에 더욱 큰 상처를 냈다. 그런 지리산을 다시 어머니 산, 민족의 영산으로 되돌리고자 하는 국민의 소망이 국가 정책으로 열매를 맺은 것이 바로 국립공원제도이다. 국토의 대표 자연을 국가가 엄정하고 체계적으로 보전하되 국민에게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를 즐기게 하고 지역발전의 동력으로 삼고자 하는 것이 국립공원의 목적이다.
드디어 1967년 12월 지리산은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국립공원 지정 이후 50주년을 맞는 현재까지의 역사는 치유의 역사였다. 불법적인 자연 훼손과 환경 오염은 거의 근절되었고, 노고단과 세석평전을 비롯한 훼손지를 완전히 복구했으며 반달가슴곰 복원 사업을 전개하여 50마리에 가까운 개체가 서식하고 있다. 국토면적의 0.2% 되는 지리산에 국가생물종의 약 20%가 서식하고 있으니 지리산은 국가생태계의 보물 창고가 되었다. 탐방객 이용 문화도 선진국 수준에 이르러 공원환경은 깨끗해졌고, 지역주민들의 자원봉사와 공원관리 참여가 활성화되고 있다. 이러한 성과의 배경에는 ‘지리산 역사 100대 인물’로 선정된 전설적인 ‘지리산 산악인’ 허만수, ‘지리산 연구자’ 김경렬, ‘지리산 기자’ 최화수, ‘산악사진가’ 김근원과 같은 경남·부산인들의 활약이 있었다. 그간의 헌신적인 공원 관리와 국민의 협력을 통해서, 그리고 지역사회의 이해를 기반으로 지리산은 민족의 영산으로서의 위용을 회복한 것이다.
이제, 지리산의 앞에는 또 다른 50년, 100년의 역사가 기다리고 있다. 국민과 함께 만든 향후 지리산의 미래상은 ‘대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진 생명의 산, 국민의 산’이다. 이 비전을 구현하기 위한 50대 과제로 천왕봉의 생태적·역사적 위용 갖추기, 한국인의 이상향 청학동 복원, 지리산의 세계 자연·문화유산 등재, 기후 변화 취약생태계 특별보호, 지리산권 5개 시·군 특화 탐방프로그램 운영, 지리산권 인문학 스토리텔링, 지리산권 공동브랜드 개발, 지리산권 생태·문화·관광 공동협력기구 운영, 지리산 관련 일자리 창출 등을 확정했다.
이들 50대 과제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지리산권의 생태·문화적 용량과 경제적 용량을 동시에 확대하여 자연도 국민도 지역도 만족하는 ‘지리산 유토피아’를 만드는 것이다. 바야흐로 ‘잘 보전된 자연을 탐방하면서 지역에 도움을 주는’ 생태관광, ‘국민 누구나 자연의 혜택을 받도록 하는’ 생태 복지의 시대이다. 우리가 지리산의 생태계와 아름다운 경관을 잘 보전하면 할수록 지리산은 지역에 더 많은 자부심과 경제적 혜택을 주고 국민에게 더 많은 정신적·신체적 건강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다. 이제, 우리 지리산을 생명력 넘치는 자연과 유구한 문화가 조화된 위대한 국립공원으로, 세계적인 명산으로 만들어가자. 과거 아픔의 역사를 늘 기억하면서, 한국인의 기상뿐만 아니라 세계인의 기상이 용솟음치는 영광의 역사를 만들어가자.
국립공원관리공단 지리산사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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