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안정적인 게 가장 아름답다. 경주 첨성대(瞻星臺·국보 제31호)를 보면 깨닫게 되는 진리다. 첨성대에는 천지의 조화를 추구하는 동아시아 전통 우주론이 깃들어 있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이다. 최근 경북 포항에서 규모 5.4의 강진이 발생한 뒤 첨성대의 건축학적 우수성이 다시금 조명되고 있다. 지진 후 국립문화재연구소 안전방재실이 첨성대의 상태를 정밀 계측한 결과, 아무런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첨성대는 지난해 9월 규모 5.8의 강진 때도 북쪽으로 2cm가량 기울고, 모서리 부분이 5cm가량 벌어진 것 외에는 다른 피해가 없었다.

비결이 뭘까. 전문가들은 구조적 안정성이 잇단 강진을 견디는 힘이라고 한다. 아래가 넓고 위로 갈수록 좁아지며 부드럽게 곡선을 그리는 원통형 몸체와, 이를 든든히 떠받치거나 지긋이 누르는 네모난 기단석과 정자석(井字石)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건축적 특장을 말한다. 첨성대는 기단석 위에 27단의 몸체를 쌓은 뒤 꼭대기에 정자석을 올린 총 29단의 구조물(높이 9.17m, 밑지름 4.93m, 윗지름 2.85m)이다. 몸통 부분에 툭 튀어나온 ‘비녀돌’은 첨성대가 흔들려 무너지지 않게 꽉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또 바닥을 1.5m가량 판 뒤 그 안에 모래와 자갈을 다져넣어 지반의 흔들림을 최소화했다. 11단 아래 내부에도 돌과 모래, 자갈을 채워 외부 압력을 흡수할 수 있게 했다. 이른바 ‘내진설계’ 개념을 적용한 것이다. 1300여 년 전에 만들어진 구조물인 점을 감안할 때, 높은 수준에 도달한 선인들의 과학적 안목과 지식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첨성대의 이런 구조적 안정성은 빼어난 곡선미로 변주된다. 선인들은 황금분할처럼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균형이 선사하는 아름다움을 조형해내는 심미안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천문학은 제왕의 학문이라 했던가. 첨성대가 신라를 대표하는 성군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선덕여왕의 치세에 건립된 것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선덕여왕은 겨울철 요란한 개구리 울음소리를 듣고는 자국에 침입해 숨어 있던 백제군을 찾아내 괴멸시키는 등 비범한 기지를 발휘한 통치로 유명하다. 삼국사기 등 역사기록에서 보듯, 신라시대에도 지진은 잦았다. 그런 시련을 이겨내고 첨성대라는 ‘천년 건축물’을 오늘날에 전한 신라인들의 지혜가 돋보인다. 우리가 본받아야 할 ‘오래된 미래’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