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사고나 재난이 터진 뒤 대책 운운하며 호들갑을 떨다가 시간이 지나면 무관심해지는 게 우리 정치권의 폐습 중 하나다. 늘 그랬던 것처럼, 이번 지진 사태에서도 똑같은 모습을 보는 듯하다. 지난 15일 포항에서 일어난 규모 5.4의 강진과 잇따른 여진, 그리고 향후 더 큰 지진 발생 가능성으로 국민 불안감이 높은데, 정작 국회에서는 지진 대책 관련 법안들이 처리되지 못한 채 무더기로 잠자고 있어서다.

지난해 9월 경주(규모 5.8) 강진 이후 여야 정치권은 지진·재난 안전 등의 관련 법안을 앞다퉈 내놨다. 그렇게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이 46건에 이른다. 하지만 국회를 통과한 것은 현재까지 6건에 불과한 실정이다. 나머지 8건은 다른 법안에 반영돼 폐기됐고, 32건은 해당 상임위원회에 계류 중인 걸로 나타났다. 계류 법안 중에는 ‘민간 건축물이 내진 설계·보강을 할 경우 자치단체장이 조례에 따라 공사비 일부를 보조할 수 있도록 한 것’ ‘지진·해일 대피시설의 설치·점검 등에 대한 법적 근거를 명확하게 한 것’ ‘지진 등의 관측장비에 대한 정기적 검정을 의무화하도록 한 것’ 등이 포함돼 있다.

이런 상태에서 여야 지도부가 포항 현지로 몰려가는 게 결코 좋아 보일 리 없다. 물론 피해 현장을 찾아가 주민들을 위로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국회에 쌓여 있는 지진 대책 관련 법안들을 제때 심사·처리하는 일에 머리를 맞대기보다 여론 환심 사기와 보여주기식 이벤트 행보에 더 열중한다는 인상이 든다. 통과된 법안 중에서도 ‘행정안전부를 거치지 않고 기상청장이 직접 긴급재난문자를 보낼 수 있도록 한 것’이 가장 대표적이라니 씁쓸하기만 하다.

지진 대책 차원에서 현실성 있고 필요한 법안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통과시키는 게 국민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길이다. 대의기관인 국회에 주어진 막중한 책무이기도 하다. 역대급 강진이 속출하는데도, 그걸 일으키는 활성단층에 대한 지도가 없고 근본적 대책은 지지부진한 게 우리의 현실이다. 정치권은 국회에서 밤새 토의해서라도 지진 안전 관련 법안을 조속히 처리하고 대책 마련에도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