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출근길에 만난 내 마음의 풍경은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서울 노량진 공시족 행렬에 억지로 줄을 서 있는 조카 녀석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다. 강요된 정답의 틀을 깨고 자발적 전문가가 되라고 얘기도 해보고 싶지만 그만두기로 했다. 대신 이번 주말에 섬진강변 하동 송림에서 화개장터까지 27㎞를 걷기로 했다. 쌍계사 가던 길에 화개장터에 들른 김동리, 술 한 잔 따르다 끝내 육자배기를 참지 못하던 주모, 그 사연을 구구절절 풀어낸 소설 ‘역마’ 얘기나 나누어 볼까 해서다. 조카 녀석은 글 쓰는 일에 마음 한구석을 내어 주고 있으니 정답 바깥의 길 위에서 문학에 대한 새로운 일을 꿈꾸고 상상할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일’은 생명의 길에 꼭 필요한 장치이다. 일이란 나와 세상이 적극적인 관계를 통하여 유의미한 가치를 창출하는 통로이며, 궁극적으로는 가능성과 잠재력이 발휘되는 자아실현을 이룰 때 비로소 일다워지는 것이다.

4000여 년 전 고대 수메르인들의 길가메쉬 서사시에 일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의미 있는 일 하면서 친구들과 맛있는 것 먹고 아름다운 여인과 사랑을 나눠라’고 한다. 먹는 것은 생존을, 사랑은 번식을 가능케 하는 것으로 생존과 번식은 우리 삶의 본질이다.

따라서 ‘의미 있는 일’은 인간의 생존과 번식의 원동력이며, 우리는 그것을 ‘업(業)’이라고도 한다. 업은 힌두어로 카르마(karma), 라틴어로는 미션(mission)이다. ‘내가 이 세상에 온 이유이자 삶을 움직이는 동인(動人)’으로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리고 업은 직업 창업 취업 실업 등과 같이 일자리와도 관계된다. 핵심은 직(職)과 업(業)이다. 직(職)은 자리이고 업(業)은 일이다. 창업은 ‘일’을 만든다는 말이고 퇴직은 ‘자리’에서 물러난다는 것이다. 일과 자리의 문제이다. 일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유용함과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물건을 만들고 팔아 월급을 받는 자리는 일이 있고 난 다음의 문제이다. 분명 일이 먼저다.

그런데 대부분이 일보다는 자리가 먼저다. 어떤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에 방점이 찍혀 있다. 업은 곧 개인기다. 자신만의 고유한 기술을 펼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하는데 나의 가치와는 상관없는 좋은 자리 찾기에 연연하니 취업이 안 된다. 설사 자리에 앉혀 놓는다고 해서 일이 일답게 굴러가겠는가.

일자리 창출 또한 직의 시각에서가 아니라 업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문제가 풀린다. 청년창업 지원금을 늘려도 그 효과는 크지 않다. 젊은이들 스스로가 자신만의 업을 발견하도록 해주어야 한다. 이제는 나의 업을 통해서 남들에게 어떤 가치 있는 것을 줄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직이 아니라 업으로 승부를 거는, 모두의 정답이 아닌 나만의 해답을 찾아 길게 보고 걸어갈 수 있도록 하는 교육 현장을 그려본다.

어느 직장인의 얘기를 들어보자. “다들 취업준비를 해야 하는 대학 4학년이 되면 많은 고민을 합니다. 이때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건 ‘난 뭘 하고 싶지’라는 고민이고, 이것이 해결된 다음에 여기에 맞는 회사를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친구가 연봉 많이 주는 곳으로 갑니다. 그중의 절반이 회사를 그만두고 나옵니다. 그러고는 똑같은 말을 합니다. ‘이건 내가 원하는 게 아니야’.” 일이 아니라 자리를 보고 갔다는 얘기다.

“고등학교로 올라갈 때 조리고등학교에 가고 싶었지만 아버지 때문에 얘기도 꺼내보지 못하고 인문계로 진학했습니다. 그때부터 방황했습니다. 학교도 다니기 싫었고 공부는 더욱 하기 싫었습니다.” 일보다는 자리에 연연하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종이비행기를 좋아하는 어느 시골 아이가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취향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종이비행기에 꽂혀 베르누이의 정리와 비행기 날개의 구조에 대한 공부를 하게 되었고, 종이의 재질을 따지면서 종이비행기 오래 날리기에 빠져 기네스북에도 오르는 바람에 얘기가 달라져 버렸다. 직이 아니라 스스로의 업에 미친 우리나라 종이비행기 국가대표선수의 얘기다.

자기의 업으로 자기만의 차이를 만들고 그 차이를 이어가는 과정에서 삶은 숙성되고 완성되어 간다. 그리하여 그 업으로 진검승부를 펼치면서 진짜 자기 삶을 살아가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다.

부산영재교육진흥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