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간 임에 대한 원망과 안타까움을 애절하게 노래하여 국민가요가 된 김정구의 ‘눈물 젖은 두만강’은 그 당시(1930년대)뿐 아니라 해방 뒤에도 줄곧 애창되었다. 두만강은 남쪽에 사는 우리에게 북방의 정서를 자극하는 이름이다. 일찍이 김동환이 쓴 우리나라 최초의 서사시 ‘국경의 밤’은 바로 두만강이 배경이다. 얼어붙은 강, 소금장수, 밀수, 호각소리, 여진족…. 그리고 그 너머 만주와 연해주로 이어지는 머나먼 북쪽의 강이다. 그래서 노래도 시도 한층 애절하게 다가온다. 두만강은 우리에게 원망과 도전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고구려, 발해의 무대이기도 했고, 우리가 오랑캐라는 여진족의 근거지이기도 했다. 우리는 그 여진이 세운 청나라에 역사적으로 가장 큰 치욕과 수난을 당했다.
아낙도 우두머리도 돌볼 새 없이 갔단다
도래샘도 띳집도 버리고
강 건너로 쫓겨 갔단다
고려 장군님 무지무지 쳐들어와
오랑캐는 가랑잎처럼 굴러갔단다(중략)
너는 오랑캐의 피 한 방울 받지 않았건만
오랑캐꽃, 울어 보렴
목 놓아 울어나 보렴 오랑캐꽃
북방 시인 이용악이 노래한 것처럼 두만강은 오랑캐의 강이기도 했다. 지금도 회령 쪽 두만강 건너 오랑캐 고개가 실명 그대로 사용되고 있고, 그 고개를 넘으면 용정 들판이 이어진다. 우리 조상들이 그 오랑캐 강을 건너고 오랑캐 고개를 넘어 새로 정착해서 마을과 도시를 일군 곳이 지금의 연변이다. 그렇다면 오랑캐 고개는 다분히 우리(조선) 입장에서 붙여진 이름인데 한족의 나라가 된 중국에서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그러나 두만강은 왕의 강이라고도 한다. 조선 태조 이성계와 청 태조 누르하치가 이곳 출신이다. 그리고 북송의 마지막 황제 흠종이 이곳에서 한을 품고 죽은 곳이기도 하다. 흠종이 이곳으로 끌려와 감금되었다가 죽은 우물에 흰 살구꽃이 피었다는 전설이 있다. 또 다른 전설에 의하면 누르하치 아버지가 어린 시절 자신보다 지위가 높은 친구의 아버지가 죽어서 그 해골을 강 건너 용바위 위에 올려놓았는데 그러면 황제가 된다는 말을 듣고 자신의 아버지가 죽었을 때 몰래 해골을 바꿔치기했다. 그래서 결국 그 아들이 황제가 되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두만강이라는 이름이 ‘도망강’과 관련이 깊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두만강 북쪽을 북간도라 한다. 조선 시대 말 국경을 넘을 수 없었던 부근 주민들이 강 사이에 있는 섬(間島)에 간다며 사실은 사이섬 북(北間島)쪽에 가서 농사를 지었다. 그곳은 청 태조의 고향이기 때문에 청에서 성역화해서 몇 백 년 동안 봉금령이 내려진 금단의 땅이었다. 오랫동안 묵은 땅은 매우 기름져 농사가 잘되었다. 그래서 하나둘 간도에 간다면서 사실은 강 건너에 가서 농사를 짓는 숫자가 늘어나다가 어느 해 조선에서 크게 흉년이 들면서 대량으로 건너갔다. 그곳이 오늘날 북간도, 또는 연변이라고 하는 곳이다. 그렇게 보면 ‘두만강’이 원래는 ‘도망강’이었다는 설이 설득력이 있다. 도망강이라는 이름은 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 세종 때 육진을 개척하면서 김종서 장군에 의해 거기 살던 여진족이 도망을 가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이다.
애초 황무지였던 그곳에 콩(豆)이 가득한(滿) 뜻의 두만강이라는 이름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또한 두만강 유역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콩을 많이 재배하지도 않는다. 원래 살던 여진족이 도망간 강이며, 조선 말에는 조선에서 굶주림에 허덕이던 사람들이 강 건너로 도망쳐 왔기 때문에 도망강이다. 그리고 아이러니한 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굶주림에 허덕이는 북한 주민들이 그 강을 건너 도망쳐 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래저래 두만강은 도망강이라는 숙명을 벗어날 수 없다. 저렇듯 도망과 뗄 수 없는 강은 세계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고려 시대에도 여진과 고려는 쫓고 쫓기는 세월이 반복되었고, 이성계가 거기서 태어나 다른 곳으로 옮겨간 것도 도망과 관련이 있고, 누르하치 역시 그곳에서 태어났지만 그곳을 떠나 중원으로 간 것도 도망과 관련이 있다. 강을 건너는 것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도전의 의미도 있지만 대개는 극단의 비극과 관련이 있다.
임아 저 강을 건너지 마오(公無渡河)
임은 기어이 강을 건너시네(公竟渡河)
아득한 옛날의 노래가 오늘날에도 목숨을 걸고 그 강을 건너 도망치는 현재적 상황이라는 것은 이 강의 길고 긴 도망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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