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전기의 대문장가 서거정(徐居正·1420~1488)의 ‘사가집(四佳集)’에 이런 시가 있다. “한강 강 위에 때는 삼월이라(漢江江上三月時), …, 바야흐로 하돈 맛이 참 좋을 때이건만(好是河豚方有味), …. ” 여기서 ‘하돈(河豚)’은 복어이다. ‘강의 돼지’라는 의미인데, 당시에도 복어를 즐겨 먹었음을 알 수 있다.

비슷한 시기 성현(成俔·1439∼1504)은 ‘용재총화’에서 “사람들과 음식 맛을 논하다가 우연히 복어가 사람을 죽이는 일에 말이 미쳤다”고 했다. 선비들이 위험을 안고 복어를 먹었다는 말이다. 복어는 오래된 먹거리이다. 학자들은 경남 김해 수가리의 신석기시대 패총에서 졸복 뼈가 출토된 것으로 미뤄 선사시대부터 복어를 먹었다고 주장한다.

예나 지금이나 복어 요리의 가장 큰 문제는 독성이다. 테트로도톡신이라는 이름의 독소는 청산가리의 10배에 달한다고 한다. 중국에서도 복어 독은 유명했다. 11세기 북송의 문인 소동파는 복어를 먹은 후 “죽어도 그 값을 하겠다(也値得一死)”라고 노래했다. 반면 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무(李德懋·1741~1793)는 ‘하돈탄(河豚歎)’이라는 시를 통해 수많은 사람이 복어를 먹고 죽어나가는 현실을 탄식했다.

일본의 경우 1882년 메이지 정부가 아예 법으로 ‘복어 식용 금지령’을 내려 통제했다. 다만 야마구치(山口)현은 1895년에 해제된다. 여기에 이토 히로부미의 얘기가 얽혀 있어 흥미롭다. 1895년 4월 17일 청일전쟁 강화조약을 위한 일본 총리대신 이토와 청 전권대사 리훙장(李鴻章) 간 협상이 시모노세키의 한 여관에서 열렸는데, 싱싱한 생선이 없어 고심하던 여관 주인은 금지령을 어기고 복어 요리를 내놓았다. 그 맛에 탄복한 이토가 자신의 고향이기도 한 야마구치현에 대해서만 금지령을 풀도록 내각에 지시했다. 족쇄가 풀린 야마구치현 어부들은 식민지시대 동해에서 마구잡이로 잡은 복어를 부산항에 풀었다. 부산의 복어국이 오늘날 전국적인 명성을 날리게 된 데는 이런 역사적 아이러니가 숨어 있다.

정부가 어제 국무회의에서 복어를 조리해 판매하는 음식점은 복어 독 제거가 필요한 경우 일반 조리사가 아닌 국가공인자격을 갖춘 ‘전문 복어조리사’를 반드시 둬야 한다는 내용의 식품위생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했다는 소식이다. 하지만 개정안이 시행될 2년 후에는 진정 안심하고 복어를 먹을 수 있을지 그 누구도 알 수는 없다.

이승렬 논설위원 bungs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