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해방 이후 나라가 좌익과 우익으로 나뉘어 분열되고 있을 때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국민의 단결을 호소하기 위해 했던 말이다. 사람들의 의견이 여러 갈래로 흩어지면 일정한 합의에 도달할 수가 없고, 일관성 있게 일을 추진하기가 어렵다. 한편 정치인들은 세를 불리기 위해서, 혹은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서 이합집산의 과정을 거친다. 어쨌든 모이고 뭉쳐야 힘도 생기고 편하다는 뜻이다. 이는 사람의 사회적인 특성에도 맞는 얘기다.

반면에 혼자서 외롭게 해야 하는 일도 있다. 마라톤 같은 기록경기는 여럿이 함께 뛰지만 기록을 향한 도전이고 자신과의 싸움이라서 혼자서 가야 한다. 학교에 모여서 공부하는 것 역시 여러 사람이 같이 하지만 지식을 습득하고 기술을 익히는 과정이라 어차피 자기 혼자서 하는 수밖에 없다. 모여서 하더라도 결국에 내 머릿속에 넣어야 하는 학습 과정은 누가 대신할 수 없는 것이다.

과거에 의과대학 교육은 주입식 강의가 많아서 수업이 끝나면 학생 혼자서 많은 양의 내용을 무조건 외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강의 형태에 대한 비판이 많아지면서 우리나라 의대들은 20여 년 전에 ‘문제바탕학습’이라는 서구의 제도를 도입하게 되었다. 지금은 비단 의대뿐만 아니라 다른 전공에서도 많이 쓰이는데 각자 자료를 찾고, 함께 모여서 토론하면서 공부하는 그룹 스터디 방식이다. 이 제도는 가히 획기적이라고 할 만큼 교육현장을 바꾸어놓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필자도 의대에 근무하고 있어서 여러 차례 문제바탕학습을 참관할 기회가 있었다. 학생들이 모여서 일정한 주제에 대해서 미리 학습해 온 내용을 발표하고, 다양한 생각과 의견을 정리해 최종 결론에 도달한다. 학생들의 협동심과 적극적인 참여가 학습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관건이 된다. 여느 직장보다도 병원은 특히 많은 직종이 모여서 일하는 곳이라서 누구라도 혼자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구조이다. 그래서 학교에서부터 이런 학습방법을 통하여 서로 공존하고 협력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직원이 많은 직장일수록 여러 사람이 한자리에 모일 기회가 많은 게 사실이고, 함께하는 행사를 자주 치른다. 우리 병원만 해도 연중행사가 수도 없이 많다. 그런데 최근에 어느 병원에서 직원들을 억지로 행사에 참석시켜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일이 있었다. 그 후로는 여럿이 모이는 데에 거부감을 가지는 사람이 늘어난 것 같다. 심지어 한자리에 모이는 기회를 아예 만들지 말자는 얘기까지 나온다. 우리 병원에서는 매년 정기적으로 열리는 모임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담당자들과 의논한 끝에 취소하기로 결정했다. 내용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요즘 같은 분위기에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행사는 없애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대세였다.

사회가 분화하고 발달할수록 개인이 중요해지고 사생활을 존중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핵가족화가 진행되고 1인 가구가 많아지는 사회 현상은, 그만큼 홀로 지내는 시간이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럴수록 자신의 시간이 소중하고, 물론 남의 시간 또한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모일 때는 모여서 해야 할 일이 있는데 회피하다 보면 인간관계가 소원해지고 다들 외톨이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모든 직장이 마찬가지겠지만 병원 또한 부서 간의 유기적인 협조와 공동 노력이 절실히 요구되는 곳이다. 그렇지만 직장을 구성하는 기본은 직원 한 사람에게서 시작하는 만큼 개인의 행복이 매우 중요하다. 충분한 시간을 통해 만들어진 각자의 안녕은 행복으로 직결될 것이고, 나아가 병원을 결속시키는 큰 힘이 될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아무튼 사람들을 불러내지 말고 혼자만의 시간을 많이 갖도록 해주자. 시대는 바야흐로 뭉치지 않고 뿔뿔이 흩어져야 사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해운대백병원 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