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오늘을 관통하는 최신 기술의 화두는 단연 4차 산업혁명이다. 4차 산업혁명이란 용어는 지난해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 주제가 ‘제4차 산업혁명의 이해’로 선정되면서 널리 알려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해 3월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AI) 바둑기사 알파고의 바둑 대결을 계기로 전 국민이 충격 속에서 맞이한 바 있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 의장인 클라우스 슈밥은 그의 저서 ‘제4차 산업혁명’에서 4차 산업혁명이 이미 시작됐으며, 그 변화는 예측할 수 없을 정도의 기하급수적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우리가 새 시대의 문이 열렸음을 알아채기도 전에 변화의 거대한 물결이 세상 곳곳을 순식간에 덮칠 태세다.
의료계 역시 예외가 아니다. 필자는 얼마 전 서울 코엑스에서 개최된 한 포럼에서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이하는 젊은 의사들을 대상으로 강연한 바 있다. 30여 년간 병원을 경영하면서 나름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던 경험담을 젊은 의사들과 공유하고, 한편으로는 4차 산업혁명시대를 현명하게 맞이하는 법을 소개하는 자리였다.
이 강연에서 의료, 헬스케어산업 분야 티핑포인트 기술을 몇 가지 살펴보았다. 첫째는 유전체학이다. 유전자 해석을 통해 자신의 몸에 발생할 질병을 예측하고 그에 따른 예방이나 처방, 유전자 치료가 크게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둘째, 인공지능 의사 IBM ‘왓슨(Watson)’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재 왓슨은 크게 두 가지 종류로 암 진단과 치료를 돕는 소프트웨어와 유전자 데이터를 분석해 미래에 발생할지 모를 질환을 예측하는 것이 있다. 전문가들은 왓슨이 1200만 쪽에 달하는 의학 전문자료를 학습하고, 환자의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3년 안에 암의 85%를 분석할 것으로 전망한다.
셋째, 원격의료도 주목되고 있다. 이웃 나라 일본은 지난해부터 이미 원격 진료를 통해 모바일 환경에서 환자와 의사가 진찰하고, 환자의 집까지 의약품을 배달하는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4차 산업혁명시대에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미국에서 올해 설립된 ‘포워드’라는 병원은 월정액만 지불하면 무제한 건강검진과 케어를 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IT 기술과 의료 기술의 융합이 치료비가 비싸기로 유명한 미국 의료시스템에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와 함께 웨어러블 의료기기 디바이스를 통해 질병 진단, 응급 처치 등 예방의학 발전과 가상현실을 의료에 접목한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이 기대되고 있다.
이제 우리는 미래의 의사 역할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미래 의학은 예측의학, 예방의학, 맞춤의학, 정밀의학 등 새로운 개념의 의료서비스 플랫폼으로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를 현명하게 대처하기 위해서 의사는 전통적인 의료 행태에서 벗어나 새로운 의료서비스 공급 모형에 대해 예측하고 준비해야 한다. 전통적인 의료란 어딘가 아픈 환자가 의사를 직접 찾아와 진찰 및 진단, 처방 또는 시술·수술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 머지않은 미래에는 지금처럼 환자가 의사를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의사가 환자에게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직접 찾아가는 시대가 될 것이다. 또한, 어딘가 아플 사람, 어딘가 아픈데 지구 반대쪽에 있는 사람, 심지어 현재 매우 건강한 사람 등 환자의 개념을 다양하게 바라봐야 한다.
그리고 인공지능과 경쟁하지 말고 협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오늘날 의사의 영역을 뛰어넘어 기술혁명을 이용해 건강행태를 관리하고 최적의 치료법을 위한 알고리즘을 구축하고, 빅데이터를 이용해 가치를 창출하는 등 새로운 역할이 주어질 것이다. 나아가 바이오산업, 첨단 의료정보산업처럼 과학기술과 의료를 융합하는 선도적인 역할도 기대해 볼 수 있다. 미래에는 융합산업이 의료를 새롭게 이끌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초연결과 초지능의 기술혁명 가운데에서 의사에게만큼은 의료인으로서 한 차원 높은 도덕성과 윤리, 철학적 소양이 요구될 것이다. 인공지능이 인간 의사보다 좀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더 정교한 진단법을 찾아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환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위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감정 영역은 당분간 컴퓨터 알고리즘에 학습시킬 수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인당의료재단 부민병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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