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명의 조선 임금 가운데 최장수자는 제 21대 영조(1694 ~ 1776)이다. 조선 임금 들의 평균 수명이 44세인 점을 볼 때 83세라는 수명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건강을 챙겼는지 알 만하다. 연구자들은 그의 장수 비결을 ‘금주(禁酒)’ ‘소식(少食)’ ‘인삼 복용’ 등 3가지로 분석한다. ‘승정원일기’ 기록에 근거, 연 140회나 건강검진을 받을 정도로 건강을 챙겼다는 사실도 비결로 덧붙인다. 그랬던 영조도 사망할 때는 이 병을 피하지 못했다. 바로 치매(癡呆)다.

기억 지능 의지 판단 등 정신력을 급격히 감퇴시키는 치매는 흔히 ‘인간이 신 앞에 공평하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병’이라고 불린다. 영조의 예에서 보듯 이 병은 결코 지위의 높고 낮음, 재산의 많고 적음을 묻지 않는다. 왕, 부자, 거지를 가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10여 년 전 영국 BBC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전 ‘얄타 회담’을 이끈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 영국의 처칠 수상, 소련의 스탈린 서기장 등 3명이 이미 치매 환자였다고 보도해 세계를 경악시키기도 했다. 그 뿐인가.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철의 여인’으로 불린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수상 등도 치매의 덫을 피하지는 못했다.

치매는 환자 본인은 물론이고 가까운 사람들, 특히 가족과 이웃까지 지치게 하는 병으로 악명 높다. 일단 발병하면 길게는 십수 년간 주변의 각별한 관심과 간호가 필요하다. 오죽하면 레이건 대통령의 부인 낸시 여사도 치매 환자 가족의 고통에 대해 “사랑하는 사람이 눈앞에서 천천히 분해되어 무너져가는 것을 지켜보는 괴로움”이라고 표현했을까.

치매는 급속한 고령화를 보이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이기도 하다. 환자 수는 2005년 8만3000명에서 올해 72만4800명으로 급증했다. 이런 가운데 경남도가 최근 함안군 대산면 대암마을을 ‘치매 안심마을’로 지정하고 시범 운영에 들어갔다는 소식이다. 마을 주민 154명 중 65세 이상 노인은 46%인 71명이고 치매 환자는 17명이다. 비교적 젊은 층인 50대들이 ‘기억 지키미’로 활동하게 된다. 특히 마을 내 식당과 슈퍼마켓 등 10여 곳은 ‘치매 등대지기’ 역할을 한다. 이들은 배회하는 치매 환자 돌보기, 실종 환자 수색하기 등을 맡는다. 경남도는 시범 사업을 거쳐 도내 전 지역으로 이 사업을 확대할 모양이다. 인류는 아직 치매 치료법은 못 밝혔지만, 우리는 ‘치매 등대지기’를 개발했다. 큰 성과를 기대한다.

이승렬 논설위원 bungs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