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살 아들이 벌써 받고 싶은 크리스마스 선물의 이름을 들이밀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팽이를 직구로 구매해 달란다. 콩만 한 녀석이 직구로 꼭 일본 모델로 사고 싶다고 졸라대서 헛웃음이 나왔다. 아이가 하나다 보니 선물을 줄 사람이 줄을 섰다. 우리 부부에 양쪽 집 어르신들, 하나뿐인 조카를 빼놓지 않는 남동생까지. 무작정 막을 수도 없어 특별한 날에는 그냥 눈감아 주는 편이다. 그러다 이 녀석 갖고 싶은 대로 다 사주는 게 문제가 있다 싶어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그 팽이가 왜 필요하냐고. 아이가 “엄마, 요새 이 팽이가 얼마나 핫한데요. 일본 모델로 해야 배틀에서 이길 수 있다니까요”라며 조잘댄다. 그러다 지난주 tvN ‘알쓸신잡’에서 유시민 작가가 출연자들에게 한 질문이 생각났다. “당신이 가진 가장 행복한 기억이 무엇인가요.”

모두가 아주 소박한 행복의 순간을 더듬었다. 많은 자녀 중 아버지가 자신만을 안아 방에 뉘어 주었을 때. 학교 가는 형을 엄마 등에 업혀 매일 배웅했을 때. 형의 고장 난 장난감을 고쳐서 갖고 노는 걸 보고 부모님이 대단하다고 추켜세워 줬을 때. 모두가 나라는 존재를 인정하고 살갑게 보듬어 주고 시선을 줘서 집중해 준 순간들이었다. 나는 언제였지를 고민해 보다 크리스마스 선물 생각이 났다.

기자가 지금까지 받은 크리스마스 선물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인형의 집인 미미의 집이었다. 포털사이트에서 검색을 해보니 생산 연도가 1987년인 대성완구의 미미의 집. 기자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받았으니 1989년에 가졌었다. 그맘때 여자아이들에게는 꼭 받고 싶은 선물 중 하나로 꼽혔다. 당시 3만5000원 정도로 기억하는데 지금도 아이 장난감으로 싼 가격은 아니니 당시로선 무척 비쌌다. 이층집으로 건전지로 작동하는 벨이 있었고 조명도 들어왔던 것 같다. 침대, 가스레인지, 소파, 부엌살림 등 세간살이도 꽤나 잘 갖춰진 집이었다. 동네의 작은 문방구에선 구하기 힘들어 엄마와 남포동의 큰 장난감 가게까지 가서 사가지고 왔던 미미의 집은 유년시절 보물 1호였다. 받은 그날부터 얼마나 애지중지했던지 기억이 생생하다.

하지만 중학생이 되면서 작은아버지와 작은 고모네의 사촌 여동생들에게 물려줘야만 했다. 당시에도 섭섭했지만 내색할 수가 없는 분위기였다. 그 일이 이제 와 무척이나 새록새록하게 아쉽고 속상하다. 최근에 자신이 가지고 놀던 미미의 집을 어머니가 잘 보관해 두셨다가 4살이 된 딸에게 다시 꺼내주어서 너무나 좋아하더라는 어떤 블로거의 글을 보고서다. 사진만 보았는데도 얼마나 반갑고 한편으로는 슬프던지. 행복했던 기억만큼 그림자도 깊게 남았던 모양이다.

며칠 전 작은 케이크 카페를 취재차 들렀다. 가게 곳곳이 케이크 관련 미니어처와 가게 주인이 손수 만든 뜨개질 작품 등으로 동화 속 집처럼 꾸며져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의 취미가 미니어처 수집이라 일본 생활 4년 동안 공부와 취미를 실컷 즐겼고 그걸로 가게를 꾸몄으니 곳곳에 정성이 가득했다. 라이프와 맛 면을 담당하다 보니 일주일에 두 명 이상의 자영업자를 항상 만난다. 이 중 반절은 모두 자신이 그때까지 걸어온 길을 버리고 내가 행복한 일이 무엇인지를 찾아 나선 사람이다. 소소한 행복은 인생의 경로를 바꿀 만큼 이렇게 힘이 세다. 나만의 작은 행복을 잠깐이라도 떠올릴 수 있는 연말이기를.

생활레저부 차장 jador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