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건 대통령, 대처 수상, 세계적 영화배우 로빈 윌리엄스…. 윌리엄스는 영화 ‘박물관이 살아 있다’ ‘패치 아담스’ 등에 출연했다. 이들에게는 치매를 앓다가 세상을 떠난 유명 인사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도 치매를 피해 가지 못했다. 윌리엄스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님을 맡아 입시지옥에 길든 학생들에게 미래를 위해 현재의 행복을 희생하지 말고 현재를 즐기라는 ‘카르페 디엠(Carpe diem)’을 가르쳤다. 대학 시절 본 영화의 기억과 감동이 여전히 남아 있다.

치매(Dementia)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말로 정신(ment, mind)이 없어지는(de, out of) 상태·병(ia, state of)이라는 뜻이다. 다양한 원인의 뇌 손상으로 기억력, 언어력, 판단력 같은 인지기능이 떨어져 일상생활에 상당한 지장을 겪는 상태를 말한다. 대표적인 초기 증상은 기억력 장애. 치매 어르신의 기억력 장애는 경험한 것 전체를 잊어버린다. 심하면 판단력도 저하된다는 점에서 노화로 생기는 건망증과는 차이가 있다.

급속한 고령화로 치매 환자는 2005년 8만3000명에서 올해 72만4800명으로 급증했다. 2030년에는 127만 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치매에 걸리면 환자 본인은 물론 치매 어르신을 모시고 사는 가족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치매에 관한 부정적 인식 탓에 주위의 도움은커녕 알리기도 힘들다. 고령화의 그늘로 치매 환자가 급증하고 이로 인한 가정 파탄이 늘면서 문재인 정부는 지난 9월 18일 ‘치매 국가책임제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치매를 개인의 문제로 보던 인식에서 벗어나 국가가 치매 환자와 가족의 고통을 분담하겠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부산지역 구·군 보건소마다 부랴부랴 ‘치매안심센터’를 설치하느라 비상이 걸렸다. 공간과 전문 인력을 확보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치매안심센터는 치매 환자와 가족에게 일대일 맞춤형 상담과 조기검진, 관리, 서비스 등 통합 지원을 한다.

이참에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이 7대 광역·특별시 가운데 가장 높은 부산이 지역 특성을 살려 치매친화적(Dementia friendly) 도시로 탈바꿈해 치매 정책을 선도할 필요가 있다. 6·25전쟁으로 전국의 피란민들이 부산에 몰리면서 생긴 기형적 도시공간구조를 개선하려고 ‘산복도로 르네상스’로 불리는 부산형 도시재생모델을 만든 것처럼. 산복도로 옥상 주차장과 168계단 모노레일은 훌륭한 관광상품이 됐다. 역발상을 통해 약점이 강점으로 바뀔 수 있음을 보여준다. 부산지역 65세 이상 노인은 지난해 말 53만6064명으로 전체 인구 대비 15.3%에 달한다.

지난달 21일 동아대병원 부산시광역치매센터에서 열린 치매협의체 회의에서는 정부의 치매안심센터 운영지침을 따르면서 지역 특수성을 반영한 부산형 지침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 참석자들은 구·군 치매안심센터가 유관기관과 지역사회 자원을 연계해 치매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수 있게 전문가 양성교육, 프로그램 개발 같은 시광역치매센터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춘성 부산재가노인복지협회장은 “치매 가족에게 단기보호 서비스가 중요한데도 부산 경남에는 단기보호시설이 없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장기간 간병으로 지친 치매가족에게 재충전 시간을 주기 위해 ‘치매 가족 휴가제’를 도입한다. 치매 어르신이 연간 6일까지 단기보호시설이나 24시간 방문요양을 이용하는 동안 치매 가족이 쉬는 개념이다.

동구는 신축 중인 보훈회관 건물에 2개 층을 증축해 치매안심센터를 내년 1월 개소할 예정이다. 최연옥 동구보건소장은 “노인 인구 비율이 23%에 달하는 동구 특성을 고려해 임대가 아닌 독자 공간을 확보하고, 산복도로에 치매 예방을 위한 ‘기억 계단’을 조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치매는 조기 발견과 지속적 치료가 중요하다. 조기에 발견하면 다양한 치매 원인 중 뇌종양, 우울증, 갑상선 질환, 약물 부작용, 영양문제는 완치될 수 있다. 치매 진행을 늦추는 약물치료도 빨리 시작할수록 효과가 좋다. 아울러 치매 예방법을 꼭 기억하자. ‘진인사대천명고’. 진땀나게 운동하라. 인정사정없이 담배를 끊어라. 사회활동과 긍정적 사고를 하라. 대뇌활동을 위해 독서, 퍼즐을 즐겨라. 천박하게 술 마시지 마라. 명을 연장하는 식사를 해라.고혈압·고혈당·고지혈을 조절하라.

의료과학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