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처음 말 등에 오르는 순간은 짜릿하다. 초보자는 안장이 생각보다 높아 다소 긴장한다. 고삐를 꽉 움켜쥐고 트레이너가 말을 이끄는 대로 따라간다. 말이 조금 요동치면 “워~!”하는 소리도 낸다. 몇 바퀴 돌고 나면 제법 여유로워 사진도 찍는다.
조금 숙련 됐다 싶으면 트레이너는 고삐를 놓고 기승자 스스로 말을 타보라고 한다. 트레이너 앞에서 박차도 넣고 채찍도 들면 말은 제법 가는 시늉을 한다.

문제는 트레이너가 잠시 한눈을 팔거나 자리를 비웠을 때다. 이때는 기승자가 아무리 박차를 넣어도 말이 꿈쩍하지 않는다. 필자가 잠시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있는 동안 말이 기승자를 태우고 마구간으로 들어간 적도 있다. 트레이너가 타면 잘 가다가 초보자가 타면 멈추거나 난리를 치기도 한다. 모든 초보 승마인이 겪고 넘기는 과정이다.

왜 그럴까. 기좌(騎座 ·무릎이 안장에 닿는 부분)나 자세가 나쁠 수 있다. 밸런스가 좋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결정적인 원인은 말이 초보자임을 알아채고 깔보기 때문이다. 말은 기수가 타는 순간 본능적으로 모든 것을 몸으로 느낀다. 기수가 긴장해서 분비하는 아드레날린도 감지한다. 기좌나 자세를 통해 기수가 초보자인지도 대번에 파악한다.

말은 나름대로 기승자를 시험한다. 가다가 살짝 꼬리를 흔들거나 다리를 비틀어 보기도 한다. 그 순간 기승자가 더 긴장한다면? 그때부터 말은 자기 세상이다. 제멋대로 행동한다. 트레이너 없이 초보자가 혼자 승마를 할 때 말이 집중할 가능성은 0%이다.

1888년 독일의 말 조련사이자 교육자인 빌헬름 폰 오스텐은 말에게 셈하는 법을 가르쳤다. 2년간 집중적인 교육을 받은 한스라는 말은 덧셈과 뺄셈을 하는 능력을 갖추게 됐다. 예를 들어 1 더하기 1을 물어보면 발을 두 번 굴러 정답을 표시하는 식이다. 많은 수의학자가 한스의 셈이 ‘사기’가 아니라고 인정했다. 한스는 세계적인 스타가 됐다.

그런데 오스카 풍스트라는 심리학자가 한스의 능력에 의심을 품고 좀 더 깊게 연구를 했다. 마침내 그는 한스가 수학적 능력을 지닌 게 아니라 극도로 관찰력이 뛰어난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한스가 빌헬름 폰 오스텐의 미세한 동작이나 표정 변화 또는 관객의 반응을 보고 정답을 골라낸다는 것이다. 말이 비록 산수는 못 해도 인간이 잘 알아채지 못하는 감각을 갖고 있다는 방증이다.

학계에서는 이처럼 실험자의 기대나 특성·행동이 피험자의 행동에 영향을 미쳐 실험 결과에 반영되는 현상을 ‘영리한 한스 효과’라고 부른다.

말은 또한 경계심이나 예민함이 강하다. 한 번 정신적으로 상처를 입은 말의 회복이 쉽지 않은 것도 이러한 섬세한 성격에서 기인된 것이다. 그래서 말은 인간의 요구를 수용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대신 한 번 수용하면 그 흡수의 폭이 매우 넓고 깊다.

한마디로 우리가 말을 속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아드레날린을 들키지 않기 위해 온 몸을 붕대로 감고 있어도 말은 당신이 무서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귀신같이 알아차린다.

따라서 말과의 교감은 폭력적이고 일방적이며 일회성에 그쳐서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다. 채찍과 박차는 말에게 조금 더 집중을 요하는 부수적인 수단일뿐이다.

섬세한 말을 달랠 수 있는 수단은 오직 시간이다. 말에게 나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그런 나를 받아들일 시간을 주어야 한다. 기승자가 말 앞에서 솔직해지고, 또 서로 많은 호흡을 맞춰가야 비로소 즐거운 승마를 할 수 있다. 인간 세상의 관계맺기와 승마는 결코 다르지 않다.

승마 국가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