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 직전의 대형 의류 매장을 헐값에 인수한 주인이 있다. 그런데 주인이 좀 이상하다. 기존 주력 상품은 팔 생각이 없다. 한때는 잘나갔던 매장인지라 단골손님이 찾아와 주력 상품을 찾으면 주인은 손사래를 친다. 품질이 떨어지니 사지 말라는 것이다. 대신 좋은 신상품 두 종류가 있으니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 하지만 신상품은 납품처가 입고를 망설이고 있어 지금은 진열대에 걸려 있지도 않은 상황이다.

그런데도 주인은 들어오지도 않은 상품의 전단을 미리 찍어내며 마케팅에 열을 올린다. 사실 소비자의 눈에는 기존 주력 상품과 비교하면 신상품의 품질이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데도 매장 주인은 입고가 될지 알 수도 없는 신상품 홍보에만 열을 낸다. 그러다가 신상품이 입고 되지 않자 주인은 기존 상품을 팔아야 할 처지에 놓였다. 하지만 불량 상품이라고 잔뜩 광고만 한 상황.

주인 : 신상품은 사정이 있어서 안 들어옵니다. 원래 우리 매장에서 팔던 기존 상품은 어때요?

손님: 주인장 입으로 불량 상품이라면서요?

이상한 의류 매장은 현재 자유한국당의 부산시장 후보 논의 과정과 비슷하다. 홍준표 대표와 핵심 측근이라는 인사들은 지속적으로 서병수 부산시장에 대해 경쟁력이 없다며 흔들었다. 그 대안으로 안대희 전 대법관과 장제국 동서대 총장을 내세우고 있지만 출마 여부부터 본선 경쟁력까지 불투명하다. 홍 대표 측이 서 시장을 흔드는 배경이 친박(친박근혜) 청산이든, 개인 감정이든, 부산의 정치 패권을 차지하려는 정치공학적 접근이든 한국당의 유력 시장 후보를 ‘경쟁력이 없는’ 후보로 낙인찍었다는 점은 당 대표로서 옳지 않은 처신이다. 현시점에서 서 시장의 대안이 없다는 점은 지역 정치권 대다수가 수긍하는 부분이다. 만일 서 시장이 최종적으로 한국당의 시장 후보가 된다면 유권자 입장에서는 당 대표조차 인정하지 않는, 공천에서 배제하려 했던 후보를 내는 셈이 된다. 주인이 ‘불량 상품’이라고 광고에 열을 올린 뒤 소비자에게 제품을 사라고 권유하는 것과 다름없다.

지역 정치권은 홍 대표의 대안이 구체화되고 최종 후보가 정해지기 전까지는 당 대표가 특정 후보를 깎아내려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부산이 아직 깃발만 꽂으면 당선이 되는 지역으로 착각하는 것 아니냐’고 일침을 가한다. 심지어는 자당의 유력 후보를 흔드는 ‘해당 행위’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은 모든 시장 후보에게 문을 열어 놓고 경선 때까지 각자 인지도를 높이라고 격려한다. 경선을 통해 유권자의 관심을 끌어올리고 지지층을 흡수하는 ‘컨벤션 효과’를 누리겠다는 것이다. “우리 매장 제품은 모두 괜찮으니 안심하고 고르라”는 민주당과 주인이 직접 “우리의 주력 상품은 불량 상품이니 사지 말라”고 하는 한국당은 대조적이다.

급기야 서 시장은 지난 20일 “공천 과정이 납득할 수 없다면 내 갈 길을 갈 것”이라며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열어두며 강한 불만을 제기했다. 이게 현실화된다면 내년 부산시장 선거는 보수 표심의 분열 속에 치러질 수밖에 없다.

홍 대표는 인천과 대구 경북, 부산 울산 경남 등 6곳 중 한 곳이라도 광역단체장 자리를 내주면 당 대표에서 사퇴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유력 시장 후보를 그토록 흔들고도 자리를 수성할 수 있을 만큼 현재 부산이 그렇게 보수세가 강한 곳인지 의문이 든다. 홍 대표와 측근들만 모르는 것은 아닌가.

정치부 부장 yjke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