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과 태평양 건너 미국의 뉴욕은 ‘도서관’이란 키워드로 1901년이 각별하다. 이 해 10월 10일 일본인 단체인 홍도회 부산지부에서 독서구락부 도서실이 문을 열었다. 우리나라 근대 공공도서관 1호로 꼽히는 부산시립시민도서관의 모태다. 뉴욕공공도서관은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가 기부한 520만 달러로 39개 분관을 거느리며 미국은 물론 세계를 대표하는 도서관 중 하나로 거듭나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는 뉴욕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수많은 이민자를 미국화하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카네기는 같은 해 2월 금융왕 존 피어몬트 모건에게 자신의 철강회사를 4억9200만 달러에 팔아넘기고 이를 사회사업에 쓰기 시작했다.

5000여 권의 장서로 출발한 시민도시관은 1911년 11월 용두산공원 중턱에 서구식 건물을 신축했다. 앞서 5월 23일 뉴욕공공도서관 본관이 개관했다. 입구 양쪽에 돌사자상 두 개가 버티고 선 뉴욕의 상징이다. 거부 존 제이곱 애스터와 제임스 레넉스, 그리고 대통령 후보였던 새뮤얼 틸던의 기부를 바탕으로 통합된 뉴욕공공도서관이 뉴욕의 심장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본관 건설에 투입된 돈이 900만 달러였으니 카네기의 기부금 규모를 짐작할 만하다. 평생 정규교육을 받은 기간은 고작 4년에 불과하지만, 도서관에서 독학하며 자수성가한 카네기다.

시나브로 100년 넘는 세월이 흘렀다. ‘한 나라의 과거를 보려면 박물관에 가고, 미래를 보려면 도서관에 가라’는 말을 곱씹는 입맛이 쓰다. 미국은 자타가 인정하는 도서관 공화국이다. 공공도서관이 맥도날드 매장보다 더 많다는 비교가 한 예다. 1만6000개가 넘는다는 숫자도 숫자거니와 축적된 자료나 지역 커뮤니티 활성화 및 디지털 기술 활용 등 서비스도 대단하다. 여기서 도서관은 지식과 정보의 원천이다. 미래를 여는 열쇠라는 이야기다.

부산의 현실은 아쉽다. 40개도 채 안 되는 공공도서관 탓에 도서관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도서관 푸어’를 양산하고 있다. ‘10분 이내 도서관 이용 시스템 구축’은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2025년까지 2050억 원을 들여 공공도서관 29개를 새로 짓자는 계획이 그래서 나왔다. 공공도서관이 38개에서 67개로 늘어나면 곳당 인구수는 5만2000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권고안인 5만 명 수준에 겨우 근접한다. 올해는 9만2368명으로 전국 7개 특별·광역시 평균인 5만274명보다 저만치 떨어져 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는 유행가 가사야 귓등으로 흘릴 수 있지만, 세계 주요 나라 가운데 독서율 꼴찌인 대한민국에서도 독서 환경이 가장 열악한 도시가 부산이라면 문제가 다르다. 물론 독서와 도서관을 바로 연결할 수 없으나 반경 1㎞ 이내에서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는 시민이 47%에 불과하다. ‘지식의 관문 중 하나로서 공공도서관은 평생에 걸쳐 무엇을 배울 수 있게 하며, 어떤 사항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하며, 개인과 사회가 문화적으로 발전할 수 있게 한다’는 유네스코와 국제도서관연맹의 ‘공공도서관 선언’이 왜 나왔겠는가.

지난 20일 부산 사상구 덕포동 옛 수도계량기 검사센터에서 부산도서관 착공식이 열렸다. 부지 1만381㎡, 연면적 1만6303㎡, 지하 2층 지상 4층 규모로 2019년 하반기 개관할 예정이다. 사업비 474억 원에 개관 준비 예산 141억 원이 더 얹어지는 이 도서관은 그냥 하나의 도서관이 더해지는 것이 아니다. 부산시 도서관의 거점 역할을 하는 ‘도서관의 도서관’, 도서관과 독서 정책을 연구하고 실현하는 도서관, 부산의 과거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부산학 자료 허브 역할을 담당하는 부산대표도서관이기 때문이다. 시민 여론 조사를 거쳐 ‘대표’를 떼고 부산도서관이라 하지만 대표도서관 역할이 오롯하다.

부산도서관 위상에 걸맞은 구체적인 역할이 필요하다. 지식허브 도서관은 어떤 모습인지, 시민과 어떻게 소통하는지가 핵심이다. 부산도서관-기초자치단체 거점도서관-작은도서관으로 체계를 세우는 만큼 각 도서관의 특징을 살리며 시너지 효과를 낼 방안을 찾아야 한다. 부산시와 부산시교육청으로 이원화한 운영 체제의 효율화, 2021년 들어설 국회도서관 부산관과의 연계도 과제다.

새해 꾸려질 부산도서관 개관 추진단 역할이 주목되는 이유다. 건립 과정을 꼼꼼하게 살피고 콘텐츠 및 운영 방안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문가와 시민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할 추진단 구성은 필수다. 매달 도서관 관계자, 전문가들과 난상토론하는 모습을 기대한다. 부산시장이 여기 참석하고 시민이 지켜볼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카네기는 ‘도서관은 이유 없이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지적했다. ‘우리는 내일의 천재가 될지도 모를 이상한 독자들과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 천재들을 위해 봉사한다’고 뉴욕공공도서관은 응답했다.

논설위원 jsdo@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