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동설한에 무슨 신춘(新春)인가 했는데, 그조차 문학적인 비유였다니. 두근거리다 못해 현기증이 날 것 같은 응모자의 울렁증은 봄 타는 것과 다르지 않음이라.

50대도 60대도 ‘문청(문학청년)’이 되는 신춘문예의 계절이 얼추 지나갔다. 문학 담당 기자에게 신춘문예 철은 또 다른 이유에서 울렁증 나는 시기다. 좁은 책상은 누런 서류봉투에 점령당하고, 담당 기자의 직통 전화에는 그야말로 불이 붙는다.

우편 말고 방문접수도 되는지, 원고는 왜 수기 작성하면 안 되는지, 본명 대신 필명을 써도 되는지, 심사위원의 이름을 미리 알 수 없는지를 묻는 전화가 반복해서 걸려온다. 대부분 질문과 요구에 최선을 다해 친절히 응했다고 생각하지만, 수천 편 원고를 뒤져서 틀린 글자 하나를 찾아내 고쳐달라는 사뭇 당당한 요구에는 “형평성에도 문제가 있거니와 물리적으로도 불가능” 하다고 조금은 찬 기운 돌게 말했던 것 같다.

고군분투하는 사이 마감과 심사가 진행됐다. 최종 당선인이 내정되면 심사위원이 함께한 자리에서 전화를 건다. “여보세요, ○○○ 님입니까. 중복투고한 사실 없으시고, 요강에 어긋난 행위도 없으셨죠… 축하드립니다. 선생님의 작품이 2018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작으로 선정됐습니다.”

3초쯤 정적이 흐르는가 싶더니 목소리의 주인공이 겨우겨우 말을 시작한다. 말에 절반은 울음이 섞였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울먹이는 당선인의 인사는 나를 향한 것이 아닌데, 왠지 모를 죄책감은 내 것이 분명하다. 원고를 분류하고 리스트를 만들 때 내 손과 머리는 감동 없이 움직였는데, 그 원고에 동봉한 소망이 그렇게 절절한 줄 알았다면 조금 더 경건했을지 모른다.

신년을 며칠 앞두고는 네 명의 당선인이 모여 소감도 나누고 신문에 실릴 사진도 찍는다. 40대 소녀, 50대 소년의 한없이 행복한 얼굴이었다. “이제 내가 시인, 소설가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잖아요.” 문학상을 탄 것은 아니지만 어쩌면 그보다 더 보람된 순간이라고 했다. 글 쓰는 일생에 처음이자 마지막 기쁨일 것이다.

심사가 모두 끝난 밤, 당선의 영광을 안지 못한 원고들을 정리하며 처음으로 여유를 가지고 훑어봤다. 행여나 당선되고도 연락을 받지 못할까 봐 몇 번이고 적어넣은 전화번호. 시 4편이 적힌 A4용지 넉 장을 스테이플러로 찍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풀로 붙여야 할지, 아예 붙이지 말지를 묻던 전화에는 어떤 조바심이 배어 있었을까.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다 어머니가 손으로 쓴 시를 몇 장 발견했다며 “이 세상 사람이 아닌데 대리응모 해도 될까요?”라고 묻던 딸의 목소리가 기억난다. 그 원고를 일부러 찾아내 소리 내 읽었다. 울리려고 쓴 시도 아닌데 눈시울이 더워졌다. 원고 더미에 묻힌 뜨거운 이야기가 얼마나 많을까.

수많은 사연을 함께 폐기하는 것 같아서 심사 일정이 모두 끝나고도 열흘 넘게 책상 위에 쌓아뒀던 원고를 어제 정리했다. 올해의 소망은 올해의 소망이다. 내년에는 내년의 해가 뜬다.

책상은 누런 봉투에서, 문학 담당 기자는 막노동에서 해방됐다. 신춘문예가 끝나야 진짜 봄이 온다.

문화부 부장 ky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