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TV에서조차 보기 어렵게 된 제법 오래된 영화 ‘친구’나 ‘말죽거리 잔혹사’는 1980년대 초 고교생들의 모습을 잘 그리고 있다. 하굣길에 모자를 벗어 가방 안에 넣고 단추를 두어 개 풀고 껄렁하게 걷는 건 십중팔구 좀 노는 아이들이었다. 그 당시 학교폭력이라면 짱 자리를 놓고 자기들끼리 주먹다짐을 하는 정도였다. 자기 학교 친구가 옆 학교 학생들에게 맞기라도 하면 떼로 몰려가 보복하는 게 멋짐으로 통하던 시절이었다. 그땐 그랬다. 조폭과 끈이 닿아 있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걔들이 학급 친구를 괴롭히거나 왕따시키는 일은 거의 없었다.

요즘은 그보다 더 어린 아이들의 폭력이 입길에 오르내리는 세상이다. 중학생이 호환 마마보다 무섭다는 우스갯소리가 농담으로만 들리지 않는다. 지난 9월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부산 여중생 폭행사건’을 저지른 게 그 또래들이다.

당시 SNS에 올라온 동영상을 바탕으로 경찰이 조사한 결과는 끔찍했다. 4명의 여중생이 또래 여중생 한 명을 벽돌과 소주병 등으로 1시간 넘게 집단폭행해 피범벅이 되게 만들었다. 동영상을 본 시민들은 그 잔인함에 충격을 받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청와대 국민청원 코너엔 소년법 폐지 청원이 올라왔고 29만6330명이 동의하는 등 큰 파문이 일었다. 이에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보호관찰 등 감옥에 안 가고도 교화되는 방법이 있는데 우리 모두는 통상 감옥에 보내는 것만 생각한다”는 공식 답변을 통해 소년법 폐지에 반대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그 사건의 가해자가 대화방에 올린 걸 보면 “심해? 들어갈 것 같아?”라고 묻는 대목이 있다. ‘들어갈 것 같으냐’는 말은 교도소 입감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 아이들은 자신들이 처벌받지 않는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극소수이긴 하겠지만 아이 중에는 ‘14세까지는 무슨 짓을 저질러도 괜찮다’는 생각에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있다.

어린 청소년의 잔인한 범죄가 잇따르자 마침내 정부가 나섰다. 지난주 정부는 형사책임을 지지 않는 ‘형사 미성년자’ 연령을 현행 만 14세 미만에서 13세 미만으로 낮추는 방안을 내놨다. 이렇게 되면 여태까지 강력범죄를 저지르고도 만14세가 안 됐다는 이유로 처벌받지 않았던 소년범의 형사처벌이 가능해진다.

형사미성년자 나이를 낮추는 문제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청소년 범죄가 처벌 나이를 낮춘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견해와, 법의 악용을 방치해선 안 된다는 의견이 갈린다. 초등학생의 형사책임은 면제하더라도 중학생이 되는 13세부터는 형사책임을 지는 것이 적절하다는 시각은 일견 일리가 있다. 아이들이 폭행을 하고도 처벌받지 않으니 겁내지 않고 다시 폭행을 저지른다. 부산 여중생 폭행사건의 경우도 그 아이들에게 따끔한 처벌이 있었다면 2차 범죄까지는 가지 않았을 수도 있다. 나이를 낮추고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측은 그로 인해 폭력 행위가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다.

하지만 정부가 여론에 떠밀려 인기에 영합한 선택을 한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선다. 처벌 강화가 범죄 감소로 연결된다는 증거는 없다. 실제로 청소년범죄가 저연령화되고 흉포화했는지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 오히려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몇몇 잔혹 사건이 소년 범죄가 크게 늘었다는 착시효과를 불러온 게 아닌가 싶다. 법무연수원의 2016년 범죄백서에 그런 통계가 있다. 2015년 범죄를 저지른 10~13세 촉법소년은 45명으로 전체 소년범 5만6962명 가운데 0.1%에 불과했다. 이 아이들을 처벌하기 위해 법을 개정했다가 교화가 가능한 다수를 같이 희생시킬 수 있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는 꼴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다. 0.1% 때문에 소년법 적용 나이를 낮추고 법을 폐지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본다. 소년법의 존재 이유는 죄지은 아이를 형벌을 줘 교정하기보다는 교화해 사회 복귀를 돕는 것이다.

다만 살인·강도 강간 등 흉악범죄에 대해서는 나이와 상관없이 엄벌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한다. ‘인천 초등생 살해사건’을 보더라도 주범이 범행 당시 17세라는 이유로 공범(19세)보다 낮은 형량을 구형받은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내 주변의 아이가 강력범죄에 희생되었다고 가정해보자. 가해자가 60세든 13세든 흉악범죄를 용서하기는 힘든 노릇이다.

소년 범죄의 책임을 온전히 아이들에게만 부담시키는 것이 옳으냐는 문제도 있다. 아이의 문제보다는 그렇게 만든 사회의 책임이 더 크다고 본다. 청소년범죄는 ‘모든 아이는 우리 모두의 아이’라는 마음으로 가정, 학교, 사회 모두 관심을 가져야 해결될 수 있는 문제다. 손쉽게 법과 제도를 고쳐 대책으로 삼기보다는 가정과 사회가 더 많은 관심을 두고 문제 해결에 적극 동참해야 할 것이다.

편집국 부국장 doll@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