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시인이 꼬미라는, 이름과 달리 매우 사납고 억센 개를 키우고 있었다. 박두진 시인이 찾아갈 때마다 불공대천의 원수를 만난 듯이 짖어댔다. 좀 친해져 보려고 다가가 으르고 달래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Y시인이 집을 새로 짓느라 임시거처로 가게 되어 그동안 꼬미를 좀 건사해달라고 박두진 선생에게 부탁했다. 선생은 적대적인 녀석의 태도 때문에 주저하면서도 맡게 되었다. 이틀을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던 녀석이 사흘째 되던 날 마침내 고분고분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머리를 조아리고 꼬리를 흔들며 함께 산책할 정도가 되었다. 두 달 뒤, Y시인이 다시 데려갈 땐 가기 싫은 듯 뒤돌아보며 쭈뼛거리기까지 했다. 그런데 웬걸, 한두 달 뒤 선생이 다시 만난 꼬미에게 반갑게 다가갔을 때, 녀석은 처음으로 돌아가 있었다. 두 눈으로 푸른 불꽃을 일으키고 허연 이빨을 드러내며 적의를 드러내 선생을 아연실색게 했다.

박두진 시인이 쓴 수필 ‘개 이야기’에 묘사된 내용이다. 시인은 뒷부분에 “이것은 개의 경우지만 이러한 배신, 배은망덕, 표변이 이 꼬미 못지않게 인간에게도 있는 것을 생각하니 몸서리가 쳐졌다”고 첨언해 두었다. 3년 된 서당개는 풍월도 읊는다지만, 개가 읽어주기를 바란 수필 같지는 않으니 인간의 행태를 개 꼬미에 빗대어 꼬집은 작품이라 하겠다.

시인은 갔지만 행태는 크게 변한 것 같지 않다. 오히려 공산주의가 자본주의와 결혼해 버렸다는 표현처럼 자본주의가 강화되고 세상은 빠르게 세분화되고 있다. 도덕성을 상실한 채 돈만 아는 타락한 천민자본주의는 여전히 우리의 삶을 옥죄고 있다. 이태의 ‘남부군’에 추위와 굶주림에 쫓기던 빨치산이 죽은 동료의 입에 남아 있던 밥알을 먹는 장면이 나오지만, 이즈음 세태는 멀쩡히 살아 있는 동료의 입속에 든 것까지 빼앗으려 든다(고 느끼는 이가 많다). 돈이 된다면 뒤통수를 치는 것은 다반사요, 한 입으로 두말하기, 버젓이 보고 있는데도 쇠가면을 쓴다. 결국 그렇게 권력과 재벌이 결탁하고 국정 농단이 벌어졌다. 개 같은 놈(개 입장에서 보면 억울할 법하다)이나 개만도 못한 놈이라고 해도 소용없었다.

개띠 해가 되었다. 꼬리 혹은 몸에 물을 묻혀서 들불을 꺼 잠든 주인을 구했다는 전설은 흔하다. 둔갑을 해서 주인을 해치려는 동물이나 귀신을 물리치기도 하고 주인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고 범인을 찾아내 주인의 원수를 갚기도 하며, 주인이 죽자 따라 죽는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가장 오래 인간과 지냈거니와 충직함의 상징처럼 여겨온 흔적들이다. 이와 관련한 내용 중 ‘한국구비문학대계’에 재미있는 것이 등장한다. 강원도 양양에서 채록한 이야기 중에 이른바 ‘견공오륜(犬公五倫)’이 있다는 것. 사람에게 삼강오륜이 있듯 개에게도 다섯 가지 도덕 강목이 있다는 말이다.

먼저, 주인을 보고 짖지 않아야 하고(見主不吠·견주불폐), 자기를 낳아준 어미를 닮아야 하며(毛色相似·모색상사), 새끼를 배면 부부가 서로 멀리하고(孕後遠夫·잉후원부), 작은놈이 큰놈에게 대들지 않으며(小不敵大·소부적대), 한 놈이 짖으면 모두 호응하여 짖는다(一吠衆吠·일폐중폐). 이를 인간의 오륜에 비기면 순서대로 군신유의, 부자유친, 부부유별, 장유유서, 붕우유신에 해당한다. 박두진 선생의 수필과 마찬가지로 개가 지켜야 할 도리라기보다 사람이 지켜야 할 것들이다. “견공들도 이렇게 윤리를 알고 지키는데 너희는 뭐냐?” 하는 비아냥거림과 다름이 없다.

대개 구비자료의 경우 그 전승 과정에서 양반이나 지배계층보다 민초들의 의식을 두드러지게 반영하기 마련이다. 구비자료는 당시의 윤리적인 가치관이 지켜지지 않고 있음을 말해준다. 특히 권력과 돈을 쥔 지배계급이 말로는 유교 윤리를 들먹이면서도 뒤로는 온갖 해괴한 짓을 일삼으니 견공을 들먹이며 개보다 못함을 비꼬고 질타한 것이다.

지금도 구비문학은 현재적 관점에서 활발히 재구성되거나 재생산되고 있다. 인터넷 게시판 문화를 통해 수많은 담화가 생산되고 공유·전파된다. 촛불시위가 열리는 광장 역시 그런 통로 중 하나일 것이다. 올해는 특히 개띠 해인만큼 ‘참새-식인종-최불암-사오정-학교괴담’ 시리즈 등에 이어 ‘개’ 시리즈가 유행하지 않을까 예측해본다. 여전히 개혁과 변화를 가로막으며 딴지를 걸고 있는 세력을 발랄한 위트와 기지로 극복해줄 구비문학의 등장을 기대해본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