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9월 29일 부산아시안게임 개회식장. ‘코리아’ 호명에 이어 남북한 선수단이 한반도기(旗)를 앞세워 동시 입장하자 대회장은 함성과 박수로 가득 찼다. 분단 이후 최초로 우리 땅에서 남북한 동시 입장이 이뤄진 순간이었다. 선수들은 맞잡은 손을 치켜들며 관중 환호에 화답했다. 당시 만경봉-92호를 타고 부산 다대항에 들어온 북한 응원단 300여 명도 관중석에서 이들을 열렬히 맞았다.

분단 이후 북한이 남한의 국제종합스포츠대회에 응원단을 파견한 것도 부산아시안게임이 최초였다. 그런 만큼 북한 응원단에 세간의 이목이 쏠렸다. 그중에서도 북녀(北女)응원단은 대회 최고의 화젯거리로 떠올랐다. 빼어난 미모에다 일사불란하고 현란한 응원동작으로 가는 곳마다 인기를 모았다. 그때 인터넷에는 전용 사이트가 등장했고 응원리더 리유경의 팬클럽 사이트까지 생겼다. 일각에서는 이런 ‘기이한 열풍’에 대해 우려의 시선도 보냈다.

남북한이 합의로 공동 응원을 펼친 건, 19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 때가 처음이었다. 양측 응원단은 어깨동무를 하고 통일을 합창해 취재진의 카메라 세례를 받았다. 당시에도 북한 치어리더들이 화제를 모았다. 돋보이는 외모로 자진모리·중모리 등의 국악 율동에 맞춰 다양한 춤을 선보였으니 그러고도 남았다. 일부 대회 관계자 사이에서는 북측이 경기 열세에 ‘미인계’를 쓰는 게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입에 오르내렸다. 하지만 공동 응원의 성과는 1991년 일본 지바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사상 최초의 남북 단일팀이란 결실을 낳았다. 현정화·리분희 등이 그 주인공이었다.

그제 남북 고위급회담으로 평창동계올림픽에 북한의 선수·응원단을 포함한 대규모 방문단이 오게 됐다. 북한 응원단의 남한 국제스포츠대회 참가는 부산아시안게임과 2003년 대구하계유니버시아드, 2005년 인천아시안육상선수권대회에 이어 세 번째다. 인천 대회 이후 13년 만에 얼굴을 보이는 셈이다. 해외 매체들도 북한 김정은의 부인 리설주가 2005년 응원단원이었다는 사실을 소개하며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16년 전 부산 사직벌에서의 감동처럼, 이번 평창에서도 남북한 동시 입장이 성사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북한 응원단과 함께 남한의 공동 응원까지 펼쳐진다면 금상첨화가 될 성싶다. 그것이 올림픽과 남북 화해의 정신에도 걸맞은 모습이다.

구시영 논설위원 ksyo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