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이 의료인들 사이에서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왓슨으로 시작된 인공지능(AI)에 대한 관심이 주춤하나 싶더니 최근 중국에서 의사시험에 합격한 인공지능 소식으로 다시 떠들썩하다. 인공지능이 언제쯤 의사를 대신할 수 있을까. 최근 국내에도 의료영상을 판독하는 인공지능 연구가 활발하다. 사실 인공지능을 이용해 의료영상을 판독한 지는 꽤 오래됐다. 1994년 재미 과학자 문성기 박사의 흉부 의료영상을 판독하는 연구가 처음 논문으로 발표됐다. 논문에는 신경망 구조와 요즘 화두가 된 딥러닝을 이용했고, 거기에 합성곱(convolution)을 도입했다. 지금 봐도 참신한 내용이다.

인공지능 뉴스의 함정 중 하나는 인공지능은 의사의 역할을 모두 수행하면서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예를 들면 흉부 방사선 사진은 무기폐, 폐렴, 폐기종, 폐결핵, 폐결절 등 수많은 질병을 분류해야 하지만 인공지능은 폐결절 하나만 연구하는 데 20년 이상 걸렸다. 연구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끝나더라도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이 남아 있다.

현재로서는 인공지능은 의료인의 대체라기보다 의료인이 활용할 도구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환자 얼굴은 외면하고 전자차트 모니터만 쳐다보던 의사가 음성으로 입력하는 전자차트의 도움으로 환자의 눈을 보며 진료할 수 있게 된 것처럼 인공지능 도움으로 더 인간적 진료를 할 수 있게 됐다.

부산대병원은 부지런히 4차 산업혁명시대를 준비하는 작업을 하면서 비수도권에서 최대의 성과를 이뤘다. 우선 IBM 인공지능 ‘왓슨 포 온콜로지’와 ‘왓슨 포 지노믹스’를 도입해 정밀의료 분야 기반을 닦았다. 암 환자를 대상으로 단일 진료가 아니라 여러 과 전문의가 모여 가장 적합한 치료법을 찾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또한, 인공지능 분야 연구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음성인식기술을 전자차트와 연동한 ‘보이스 키보드’가 그중 하나. 보이스 키보드는 환자와의 교감이 중요한 진료 시간에 의료진의 손과 눈을 컴퓨터 모니터와 키보드에서 해방시켰다. 이와 함께 비정형 텍스트 데이터를 의미 있는 정형화된 의료 데이터로 변환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데, 이는 ‘자연어 처리기술’로 불리며 종전 의료정보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우리나라 의료데이터를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많은 데이터가 자유진술문 형태의 비정형 데이터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을 이용하면 기존 비정형 데이터로 분류되던 의료 데이터 상당 부분을 정형화된 데이터로 보관할 수 있고, 이는 의료 빅데이터, 의료 인공지능 연구에 활용될 수 있다. 부산대병원 연구팀은 자유진술문으로 입력된 진단명을 표준분류 사인으로 분류할 수 있게 하는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현재 정확도 80%를 확보했다.

부산대병원은 2015년부터 의료사각지대에 놓인 원양선박 선원의 건강을 위해 해양의료연구센터를 설립해 인공위성통신과 모바일 진단기기로 응급 및 만성 질환을 관리하고 있다. 현재 원양 선박 39척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카자흐스탄 디지털헬스케어사업에 진출했다. KT, 부산테크노파크와 협력해 알마티, 악토베 등 10개 병원에 디지털헬스케어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 세계 9위의 넓은 영토를 지닌 카자흐스탄에서 영아 사망률을 낮추는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된다.

부산시가 추진 중인 진료정보교류에 지역 4개 대학병원을 포함해 의료기관 2600곳 중 4분의 1 이상인 1·2·3차 의료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참여율이 전국에서 가장 높다. 국제 표준인 HL7 기술이 적용된 진료정보교류사업은 병원 간 데이터를 주고받는 것이 목적이지만, 장기적으로는 환자 데이터가 국가 표준 형태로 관리되는 것이다. 과거 환자가 병원을 옮길 때마다 진료기록을 가지고 다녀야 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 20년 전에 했던 혈액검사 결과, 수술명, 수술 과정을 국가가 보관한다는 뜻이다.

의료 인공지능은 학습할 자료를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다. 우리나라는 2015년에 전자차트 도입률이 95%를 넘었고, 의료영상을 파일 형태로 저장하는 PACS(Picture Archiving & Communication System)가 도입된 지 10년이 넘었다. 학계와 병원, 정부의 노력이 어우러져 한국형 왓슨이 탄생할 날을 기대해본다.

부산대병원 의료정보센터장·신경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