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의 소도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낼 때다. 공부 좀 한다는 주위의 고 3 형·누나들은 부산으로 진학을 많이 했다. 집안 형편이 아주 좋았다면야 서울 쪽으로 보따리를 꾸렸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부산만 한 곳이 없었던 게 이유였다. 거리가 가까운 데다 국립대에 합격하면 학비도 쌌다. 동네 어른들은 이런 형·누나들을 둔 집안을 가리켜 “자식 농사 참 잘 지었다”는 말들을 종종 하곤 했다.

여건상 진학이 불가능하거나 공부머리가 아예 없었던 동네 선배들은 일찌감치 일자리를 구하려 부산으로 향했던 것 같다. 그곳에는 큰 신발공장 등이 많아 취직이 쉽다고 했다. 나중에야 그 유명했던 왕자표, 기차표, 말표 고무신이 모두 부산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동명목재라는 큰 기업의 본사가 부산에 있었다는 것도 그 즈음에야 들었다.

서울 등의 지인들은 부산에 살면 바닷가에서 회 안주를 두고 소주를 자주 마실 테니 참 부럽다는 말을 많이 한다. 야경이 아주 멋지더라며 광안대교 이야기도 빼놓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어디에서나 회 맛은 비슷하고 다리에 조명을 달면 다 아름답다고 되받아 치지만 속으로는 뿌듯한 마음이 없지는 않다. 한편으로는 부산의 매력을 나만 모르고 있는 것 아닌가라는 반성을 하기도 한다.

부산이 우리나라 제2 도시라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서울을 뺀다면 인구와 경제력, 생활수준 등의 측면에서 부산을 능가하는 곳을 찾기 힘들다. 아시안게임과 APEC(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 정상회담을 가질 정도로 국제적 인지도 역시 높다. 부산국제영화제(BIFF)는 이제 그 분야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행사로 자리매김했다. 부산에 산다는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는 의미다.

그러했던 부산의 위상이 요즘 크게 흔들리고 있다. 지역 경제가 예전만 못해지면서 도시가 활기를 잃고 있다. 2016년을 기준으로 할 때 부산의 경제성장률은 1.7%다. 2014년 3.3%, 2015년 2.9%에 견주면 크게 낮아졌다. 미래 경제활동을 담보할 청년층(15~29세)의 경제여건도 좋지 않다. 지난해 부산의 청년실업률은 11.5%로 2000년 12.1% 이후 1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인구 감소는 더 심각하다. 행정안전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부산 인구는 347만 명이다. 2016년의 349만 명에 비해 2만여 명이 줄었다. 10년 전인 2008년보다는 9만여 명이 감소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추세라면 2035년에는 320만 명대까지 떨어질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특히 2015년 255만 명이던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2035년 186만 명으로 하락할 전망이다. 출생률 저하로 인한 인구감소는 우리나라의 공통된 고민이라지만 이쯤 되면 보통 일이 아님은 분명하다.

서울의 최상위권 명문대가 아니라면 부산 쪽 대학이 훨씬 낫다라던 인식도 깨진 지 오래다. 과도한 서울 중심 풍조가 가져온 폐단에서 비롯됐음이 분명하나 지역 대학의 이름값이 예전보다 못한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재무구조가 튼튼한 알짜기업이라고 소문이 나도 부산에 있다는 이유로 인재들로부터 외면을 받는 것 역시 부인하기 힘든 사실 가운데 하나다. 이러니 부산의 자리를 호시탐탐 엿보는 인천시가 올해에는 시세 역전이 가능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유정복 인천시장은 아예 오는 10월 15일 인천시민의 날에 ‘서인부대(서울-인천-부산-대구 순) 원년’을 선포할 것이라는 약속까지 했다.

물론 인천의 ‘호들갑’에는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문제는 뾰족한 해결책이 없다는 점이다. 경제가 살아나려면 일자리 창출이 필수적이지만 현재의 부산 사정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과거 부산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신발 등 노동집약적 산업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주력산업으로 여겨졌던 조선 및 조선기자재 분야도 불황에 허덕이고 있다. 난국을 헤치고 나갈 돌파구가 열리지 않으면 부산의 미래는 지금보다 더 암울해진다는 이야기나 다름없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쉽지는 않을 터지만 지금은 부산이 앞으로 ‘무엇으로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진지한 성찰이 있어야 할 때다. 경제분야라면 장차 부산을 살릴 산업이 무엇인지를, 교육분야라면 대학 경쟁력 제고를 위한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인구의 역외 유출을 막기 위한 최선책이 어떤 것인지를 찾는 노력도 필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오는 6월 있을 지방선거에서는 유권자들의 선택 기준도 이전과는 달라져야 하는 게 당연하다. 이제는 어느 당 출신인지, 정권 실세와 어떤 줄이 닿아 있는지는 판단의 대상에서 제외되야 한다. 부산의 앞날을 고민하지 않는 후보에게는 미래가 없다. ‘서울 다음이 부산’이라는 틀이 깨진 뒤 그 시절이 좋았네라는 식으로 내뱉는 회한은 쓸데없는 푸념일 뿐이다. 준비하지 않으면 뒤처지게 마련이다.

논설위원 haore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