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15일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에서 우리나라 지진관측 사상 두 번째 규모인 5.4의 지진이 발생했다. 2016년 9월 12일 규모 5.8의 경주 지진 이후 약 1년2개월 만이다. 포항 지진은 경주 지진보다 규모가 작았지만 훨씬 큰 피해가 발생했다. 77명의 인명과 1000억여 원의 재산 피해 그리고 수백 명의 이재민이 지금도 임시 거주시설에서 불편한 생활을 하고 있다.
포항 지진은 우리나라가 결코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님을 다시 알려주었으며, 지진 피해는 지진의 규모에 반드시 비례하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규모가 작은 포항 지진이 경주 지진보다 왜 큰 피해를 발생시켰을까.
먼저, 포항 지진의 진원지 깊이가 3~7㎞로 11~15㎞의 경주 지진에 비해 얕았다는 데 있다. 지하 단층이 끊어지는 지점(진원지)에서 지진파가 발생하면 단단한 암반을 통해 지표로 전파되면서 지진동은 일반적으로 점점 감쇄된다. 따라서 진원지가 얕으면 지진동의 감쇄가 적어 지표에서의 흔들림은 보다 클 수밖에 없다.
또한 포항시 지하의 지질 특성과도 밀접히 관련된다. 포항 일원은 약 1000만 년 전까지도 동해 바다에 잠겨 있었다. 그 때문에 다른 지역과 달리 수백ｍ(최대 850ｍ)의 두꺼운 해성 모래와 점토층이 퇴적되어 있다. 지하에서 발생한 지진동은 단단한 암반을 통과하면서 진폭이 감쇄되지만 포항시와 같이 고화되지 않은 연약한 퇴적층을 통과하게 되면 다시 증폭되는 성질이 있다.
이와 함께 피해가 집중됐던 포항시 북구 진앙지 일원과 남구 송도동은 지하 수십ｍ 구간 내에 지하수로 포화된 느슨한 모래층이 분포해 ‘액상화’ 피해가 커졌다. 액상화는 물에 포화된 모래층에 지진동이 가해지면 수압의 증가로 모래 입자 사이로 물이 흘러 들어가 입자 간의 지지력을 잃고 모래가 액체처럼 움직여 지표로 분출되는 현상으로, 큰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일본에서는 자주 나타난다. 낙동강 주변의 연약지반과 해안 매립지가 많은 부산시로서는 남의 얘기가 아니다.
포항 지진은 우리나라 지진 관측 이래 최초로 액상화 피해를 발생시킨 지진이다. 우리의 삶터 지하의 지질 특성이 우리의 생명과 재산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선진국의 경우에는 시설물을 건설하기 전에 철저한 지질조사를 실시하며, 지질조사 자료를 근거로 지역별 액상화 위험성을 등급으로 표기한 액상화지도를 제작해 주민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포항 지진의 피해가 컸던 이유는 자연적인 요인과 함께 인위적인 요인이 포함되어 있다. 지진의 발생 깊이를 인간이 제어할 수는 없지만, 지질 특성에 관한 철저한 조사와 이에 적합한 공법을 적용하여 시설물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정부는 전 국토의 지질 정보를 수집·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국토를 개발·관리할 책임이 있다.
우선 정치권과 정부는 지하공간 정보를 수집하고 데이터베이스하는 법과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지역별로 차별화된 내진 기준 설정과 맞춤형 건설공법 선정, 지반 보강의 우선순위 결정 등을 위해 지역별 지진재난발생 위험도를 예측하고 고위험 지역을 미리 선정하는 데 필수적인 액상화지도와 같은 국가 지진재해 위험지도를 제작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제야 이 일을 시작하려 하고 있다.
지진 재해 위험지도 제작을 위해서는 전 국토를 대상으로 하는 방대한 자료 수집이 먼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들의 의식 전환과 협조가 필수적이다. 포항 지진을 통해 지하 지질정보 수집은 지진으로부터 안전을 확보하는 데 있어 중요한 선제조건이라는 교훈을 얻었다. 국가 시설물의 경우에는 대부분 시행되고 있지만 개인 시설물을 건설할 때도 지질조사를 하고 이를 바탕으로 적합한 건설공법을 적용해야 하며 조사 자료를 정부에 제출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의식전환이 필요하다. 현실적으로 정부가 개인 사유지를 모두 조사할 수는 없지 않는가.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지불해야 할 대가가 필요하다. 정부는 국민의 자발적인 지질조사와 자료 제공을 유도하기 위해 제도적으로 세제 혜택이나 정책보험을 통한 지원과 같은 인센티브 제공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부산대 지질환경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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