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 US NEVER FORGET, 잊지 말아야 할 것!”

올해 상반기 완성되어, 스웨덴 전역과 부산국제영화제에 상영될 영화다. 6·25전쟁 당시 부산에 주둔하며 부상병과 부산시민 등 200만 명을 치료한 스웨덴 야전병원을 재조명하는 스웨덴 아카필름사의 다큐멘터리이다. 스웨덴은 한국전 당시 의료지원 5개국 중 가장 먼저 의료단을 파견했다. 1124명 참전 주인공 중 생존자가 50여 명에 그치는 안타까움으로 영화제작에 나선 것이다. 연초부터 이 영화를 기다리는 것은 제작 한쪽에서 읽히는 반포보은(反哺報恩)의 숨은 자막 때문이다.

2년 전 부산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긴 6·25 참전 프랑스 용사가 있었다. 추모 1주기를 맞아 그 가족 일행이 유엔묘지가 내려 보이는 우리집에 머무르다 갔다. 이 기사가 소개된 후 지난해 10월, 스웨덴대사관이 영화제작을 위해 그 감독 일행을 우리집으로 안내했다. 자국 내 촬영은 그전에 끝냈다. 이번에는 서전병원(西典·스웨덴) 건물로 쓰던 부경대의 전신인 수산대 본관과 달라진 부산의 모습을 촬영하였다. 또한 5박 동안 우리집을 스튜디오로 꾸며 당시 병원의 환자와 근무자 인터뷰를 진행했다.

먼저 그들이 아니면 생명을 부지했겠느냐고 큰절을 올린 80대 할아버지, 이분은 골수염으로 매일 뼈에서 고름이 멎지 않아 하마터면 다리를 잃을 뻔했다. 너무 아파서 인생을 포기하다시피 했는데 서전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대학에서 배구선수로 활약했다. “서전병원 의술로 새 생명을 부여받았기에 유럽사람만 만나도 반갑다. 의료진을 제대로 집에 한 번 모시고 싶다”라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이튿날 교장 출신 할머니는 60년 전의 기억을 어제 일처럼 또렷하게 반추했다. “저는 16세 때 폐결핵으로 치료를 받던 중, 병원이 떠나간다는 말을 들었다. 병이 더 악화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는데, 금발의 군의관이 스웨덴에서 한국으로 1년간 매달 약을 보내줬어요. 그 약으로 완쾌됐으니 16살 이후의 삶은 서전병원이 준 선물입니다”고 표현했다. 그 의사를 찾으려고 스웨덴까지 갔으나 보지를 못 해, 꼭 만나고 생을 마쳤으면 좋겠다고 했다.

스웨덴을 은혜의 나라, 제2의 조국이라고 표현한 이는 복막염 환자였다. 3살 때 입원해서 큰 수술도 두 차례 받았다. “충수염은 당시는 죽음에 이르는 병이었다. 부모로부터 3년의 생명을 부여받았다면 스웨덴 의료진에 의해 60년의 생명을 부여받았다”고 했다. 간호사인지 의사인지 자신을 많이 안아준 ‘에바’를 엄마라고 생각했다. 입양절차까지 밟았으나 한국부모의 반대로 무산됐고, 배에 난 수술 자국을 보며 자주 ‘에바’를 떠올렸다. 안타까운 경우도 있었다. 엑스레이 기사로 근무했던 할아버지는 연로하여 인터뷰에 응하지 못했다.

마지막 차례는 남구청의 편집장이었다. 사연이 묻혀 버렸을지도 모를 환자와 병원자료를 1년이 넘도록 끈질기게 추적한 그는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제작진과 저녁을 먹고 귀가하던 장면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현장을 지휘하던 키가 큰 감독은 길을 걸으면서 유난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북마크를 찾는다는 것이다. 지하 서점으로 그를 안내했더니 태극 마크가 그려진 책갈피 8개를 구입하였다. 팔순 노모가 동네 독서클럽에 나가는데 그 멤버가 8명이란다. 이제야 노모의 선물을 찾았다며 중년 남자의 얼굴이 환해졌다. 효성이 지극하다고 건넸더니 “Mam happy, I happy”라며 온 얼굴에 웃음을 터뜨렸다.

전쟁통에 안아준 파란눈의 여인을 엄마라 불렀던 우리는 올해 초 피란수도 부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으로 선정하였다. 보이는 흔적과 건물만이 유산이 아니다. 우리를 보살펴 준 참전 주인공들, 더러는 사라지고 더러는 마지막 생을 사위어가고 있다. 시간이 없다. 이제 우리가 저들을 찾아가 은혜를 표시해야 한다. 이번 스웨덴 영화는 꺼져가는 모성애 같은 인류애에 하나의 숯덩어리이다. 세계문화유산의 풍로를 뜨겁게 지필 피란수도의 휴머니즘이 부산의 시장과 동네 골목 속에 장작더미로 쌓여 있다.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주는 까마귀의 효심, 귀국선물로 하찮은 새의 보은을 떠올리게 한 스웨덴 감독의 영화를 미리 본다. “NEVER FORGET”으로 적어 놓고 “Mam happy, I happy”로 읽게 한다.

한국자산관리공사 선임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