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금요일, 본지에 실린 기사와 관련해서 여러 통의 전화를 받았다. 지역의 오피니언 리더도 있었고 공무원도 있었다. 한 동료는 언론비평 전문지인 ‘미디어오늘’의 전화를 받기도 했다. 바로 ‘부산 원도심 통합’ 관련 기사 때문이었다. 전날 서병수 부산시장과 원도심 중·서·동·영도구의 구청장 4명이 공동 기자회견을 했다. 내용은 2022년 7월까지 원도심 4개 구를 통합한다는 것이었다. 지역의 다른 신문은 이 사안을 1면 머리기사로 올리면서 ‘부산 중·서·동·영도구, 2022년 통합한다’라는 제목을 달았다. 반면 본지는 똑같이 1면 톱 자리에 배치하면서 제목을 ‘부산 원도심 4개 구 통합 무산’으로 뽑았다.

독자들은 상당히 의아했을 것이다. 똑같은 사안을 두고 전혀 다른 제목이 나왔으니 말이다. 신문을 두 개 다 받아보는 어느 분은 아침에 출근하기도 전에 이게 어찌 된 거냐고 물어왔고, 다른 분은 무슨 배경이 있냐고도 했다.

왜 이렇게 됐을까. 사안을 보는 관점의 차이였다. 다른 신문은 시장을 비롯한 5명의 합의가 의미 있다고 판단해 내용을 있는 그대로 전달했다. 원도심 통합은 지역에서 초미의 관심사였던 데다, 시장과 통합 당사자인 구청장 4명이 합의했으니 충분히 1면 머리기사로 올릴 만했다. 하지만 본지는 합의 내용에 의문을 품었다. 서명한 면면을 보면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지방선거를 앞둔 단체장들의 합의가 선거 후에도 유지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더군다나 구청장 4명 중 3명은 3선 연임제한에 걸려 출마조차 못 한다. 그들의 약속이 과연 얼마나 구속력을 가지겠나 말이다. 어차피 6월 선거 전에는 통합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통합 무산’이라는 제목이 나온 것이다.

신문쟁이들 사이에서는 ‘신문은 편집이다, 편집은 제목이다’는 말이 있다. 신문에서 편집과 제목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의미다. 위의 사례에서 보듯이 기사에 충실한 제목이 모두 좋은 제목은 아니다. 지난해 미국 대선 당시의 한 제목이 기억난다. 선거 다음 날 북미에서 발행되는 신문들은 대부분 ‘TRUMP WIN’ ‘PRESIDENT TRUMP’ 식의 제목을 달았다. 그날 역시 기자의 눈길을 사로잡은 제목이 하나 있었다. 퀘벡에서 발행하는 신문이었는데 특유의 느끼한 표정을 짓고 있는 트럼프 사진 왼쪽에 기사는 한 줄도 없이 큼지막한 헤드라인이 달렸다. 바로 ‘OH MY GOD’ 이었다. 그 지면을 보고 많은 사람이 빙긋이 웃으며 동의했을 거로 생각한다.

편집도 마찬가지다. 편집데스크로 일했던 기자의 뇌리에 뚜렷이 남아 있는 지면이 하나 있다. 2011년 3월 일본에 대지진에 이은 쓰나미가 덮쳤다. 다음 날 영국의 일간지 인디펜던스가 1면 톱기사로 일본 쓰나미를 다뤘다. 그런데 그 1면이 굉장히 파격이었다. 인디펜던스는 1면 전면에 일본 국기를 싣고 가운데 빨간 원에 일본어로 ‘がんばれ 日本, がんばれ 東北’이라고 적었다. ‘힘내라 일본’의 의미였다. 당시 국내 어느 보수 언론은 ‘일본침몰’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을 달아 구설에 올랐던 터라 더 충격적이었다. 신문이 팩트만 전달하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는 걸 절감한 날이었다.

이렇듯 제목과 편집은 큰 반향을 일으킨다. 최근 서울에서 발행하는 신문들의 편집과 제목을 보면 할 말을 잃게 된다. 지난해 부산·울산과 직접 연관이 있었던 원전폐쇄 논란은 지역의 여론을 깡그리 무시하고 오로지 탈핵 반대에만 목청을 높였다. 평창올림픽과 남북단일팀 관련 보도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부가 비록 북한에 끌려다닌 측면이 있지만 평창올림픽에 색깔론을 덧입히는 데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 더 참을 수 없는 건 지역분권 개헌 문제이다. 중앙의 입장에서 분권을 하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떠들어댄다. 많이 보는 신문과 좋은 신문은 다르다. 영국의 경우 대중지인 ‘더 선’의 발행 부수가 진보지 가디언보다 훨씬 많다. 하지만 더 선이 더 좋은 신문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곁가지 설명이 좀 길었다. 일주일이나 지난 1면 제목을 가지고 웬 뒷북이냐고 야단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적어도 그날 신문이 왜 판이하게 달랐는지 의아해하는 독자들에게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 몇 마디 적어봤다. 신문이 다르다는 것은 다양성 측면에서 나쁘지 않다. 독자들에게 생각할 기회를 주고 균형 잡힌 시각을 갖게 해준다. 다만 모든 것에 앞서 철저하게 팩트에 근거해야 하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다.

사족 하나. ‘원도심 통합 무산’이라는 제목을 뽑았다고 해서 서병수 시장의 의도를 폄하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의 원도심 통합 제안을 높이 평가한다. 그리고 그 결단을 지지한다. 이번엔 무산됐지만 6월 선거에서 누가 당선되든 원도심 통합만은 꼭 이뤘으면 하는 바람이다. 원도심을 위해, 부산의 발전을 위해.

편집국 부국장 doll@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