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와 ‘투기’는 단어 하나 차이다.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투자와 투기는 경계선이 모호하다. 둘 다 똑같이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한 자본투입 행위이다. 이윤이 보장되지 않는 대상에 소중한 자본을 투입할 바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적 관점에서 투자와 투기는 다르다. 투자는 개인과 공공의 이익을 동시에 충족하는 목적의 자본을 투입하는 행위다. 반면 투기는 지극히 개인적 이윤 창출을 위해 타인의 이익을 침해하면서 자본을 투입하는 행위다.
요즘 가상통화 매매를 두고 투자냐, 투기냐 하는 논란이 뜨겁다. 정부는 투기로 규정짓고 거래소 폐쇄와 같은 강력한 규제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기존 참여자들은 투자라고 주장하며 거세게 저항하고 있다. 여기에 가상통화 시장에 뛰어든 사람들이 대부분 젊은 층인 까닭에 정치권까지 가세해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전문가들도 투자와 투기를 놓고 견해가 팽팽하게 엇갈린다.
몇 년 전 국내 유명 제빵업체의 체인점에서 비트코인 한 개와 단팥빵 세 개를 맞교환하는 행사를 벌인 적이 있다. 전날 팔다 남은 단팥빵을 처리하기 위한 마케팅 이벤트였다. 당시 단팥빵 가격이 개당 2000원 정도였음을 감안하면 비트코인 가격은 6000원 정도로 평가된 셈이다. 그러던 비트코인이 불과 몇 년 만에 수천만 원에 이르니 폭등이라는 표현도 모자랄 지경이다.
가상통화(Virtual Currency)는 2009년 비트코인이 처음 등장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다 보니 막상 매매에 뛰어든 사람들도 가상통화가 무엇인지 잘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쉽게 말하면 가상통화는 온라인상에서 통용되는 일종의 쿠폰이다.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지폐나 동전 같은 법화(法貨)가 아니다. 마치 카지노의 칩이나 백화점 상품권처럼 특정 환경에서 통용되는 파생 화폐인 셈이다. 물론 가상통화는 4차산업의 핵심 기술인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개발된 점에서 디지털 문명 시대의 중요한 결제 수단으로 진화할 가능성이 크다.
모든 재화의 가치는 인간의 삶에 얼마나 기여하는가에 따라 결정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희소성과 유한성이 더 크게 작용한다. 인간 생존에 필수적인 쌀이나 소금보다 금이나 다이아몬드값이 훨씬 비싼 것도 이런 이유다. 하지만 쌀이나 소금이 더는 지구에서 생산되지 않는다면 쌀과 소금값은 금이나 비트코인보다 몇백 배 더 치솟을 것이다. 가상통화도 마찬가지다. 지속적인 기술발전으로 가상통화가 무한 발굴된다면 가치는 휴짓조각이 될 것이다. 현재 기술발전 속도로 보면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다.
가상통화 시장에 대한 우려는 우리 정부만 갖고 있는 게 아니다. 세계 각국이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가상통화는 디지털시대에 중요한 결제수단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음은 분명하지만 결제 수단이 투자의 대상인지는 의문이다. 물론 현실 경제에서 국가가 발행하는 화폐도 해당 국가의 경제 규모나 상황에 따라 교환비율을 정해서 거래한다. 가상화폐도 거래의 대상은 될 수 있다. 현실 화폐가 가치에서 차이가 나듯이 가상화폐도 가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가상통화가 현실 화폐를 기준으로 책정된 가격에 따라 거래된다는 점에 있다. 이는 가상통화가 현실 화폐와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이고, 만약 가상통화가 현실 화폐의 경계선을 넘으면 기존 경제 질서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더욱이나 누구도 보증하지 않는 가상화폐가 무한 발굴되어 유통되는 상황이 벌어지면 현실 경제는 근본부터 흔들릴 것이다. 지금도 1000여 개가 넘는 가상통화가 나와 있고, 이 중 500여 개가 거래되고 있으니 말이다.
따라서 문제 해결은 가상통화가 현실 화폐의 영역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명확히 구분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예를 들면 가상통화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거래는 가상통화로만 하도록 정하는 것이다. 가상통화를 현실 화폐로 교환하는 것도 전면 금지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가상통화가 없는 사람은 거래에 참여할 수 없고, 설사 가상통화를 대량 보유하고 있더라도 현실 화폐로 교환할 수 없으니 일확천금을 노리는 투기도 아예 없을 것이다. 지금처럼 가상통화를 현실 화폐로 거래하고 교환하는 상황을 그대로 둔 채 규제하는 것은 헛발질이다.
재벌닷컴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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