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중순 법원의 판결 하나가 관심을 모은 적이 있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었음에도 구조행위 당시 술을 마신 상태라는 이유를 들어 의사자로 인정하지 않는 건 위법하다는 내용이었다. 그 전에 보건복지부는 이 사람이 의로운 행동을 하기는 했지만 술에 취한 까닭에 자신이 처할 위험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지 못한 채 물에 뛰어든 중과실이 있다며 의사자 인정을 거부했었다.

법원의 이 판결은 ‘자신의 생명 또는 신체의 위험을 무릅쓰고 급박한 위해에 처한 타인의 생명·신체 또는 재산을 구하기 위한 사람’이라고 정의된 의사상자의 범위를 명확하게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망자가 행여 술에 취해 있었다 하더라도 익사 위기에 빠진 타인을 구하려 한 행동을 함부로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세상이 각박해지면서 우리 사회에는 이기주의만이 남았다는 말이 자주 나온다. 오지랖이 넓으면 자신만 손해라고 한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마다 반드시 나타나는 의로운 사람들을 보면 꼭 그런 것 만도 아니다. 이들은 살인현장에서 범행을 막으려다 목숨을 잃고 교통사고 때 부상자들을 구하려다 자신이 다치기도 한다. 거창하지는 않지만 길거리에서 동사 위험에 직면한 노인에게 입고 있던 점퍼를 벗어준 뒤 집까지 동행한 중학생들도 의인이라 할 수 있다.

40명 가까이 숨져 모두를 안타깝게 했던 밀양 세종병원 화재현장에서도 예외 없이 의인들이 등장했다. 병원 직원들은 유독가스와 싸우면서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시민들도 사다리차를 동원하거나 환자 이송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구조활동을 도왔다. 외신들조차 “이들이 없었다면 희생자가 더 많았을 것”이라고 보도할 만큼 의로운 행동이었다.

이 과정에서 당직 의사와 책임 간호사, 간호조무사 등 직원 3명이 숨졌다. 이들은 거동이 자유롭지 못한 환자들을 대피시키거나 소화기로 직접 불을 끄려다 밖으로 빠져 나오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남도와 밀양시 등은 이들의 살신성인이 사회에 깊은 울림을 줬다며 정부에 의사자 선정을 요청하기로 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도 국민들의 관련 청원이 줄을 잇고 있다. 세상을 떠난 뒤 쏟아지는 찬사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만, 그래도 의료진 3명의 숭고한 죽음이 쉽게 잊히지 않았으면 한다.

염창현 논설위원 haore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