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장 큰 화두는 4차 산업혁명이고, 금융경제 분야에서는 블록체인 기술을 바탕으로 한 비트코인 같은 가상화폐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상하게도 비트코인에 적용된 혁신적 블록체인 기술보다는 이 기술이 적용된 가상화폐의 가격(가치)에 너무 몰두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이 마치 도박을 하듯 자신의 많은 재산을 투자한 후 하루에도 수십 번씩 가격의 부침에 탄성, 흥분, 비애를 경험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연초에 1비트코인은 무려 2500여만 원까지 치솟았다가 여러 정책적 요인에 의해 갑자기 50% 이상 하락하고 이제는 900여만 원에 머물고 있다. 가상화폐는 소프트웨어적으로 개발돼 실체 즉 유형상의 모습을 가지지 않는 신기루와 같은 존재다. 하지만 이것이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면서 사람들은 이 돈(화폐)을 찾기 위해 많은 시간과 전기 및 채굴기(컴퓨터 하드웨어) 같은 인프라를 사용한다.
여기서 가상화폐 채굴에 소요되는 시간과 엄청난 전기 사용량을 차치하더라도, 공학을 전공한 연구자로서 관심을 가지는 채굴기 즉 컴퓨터 하드웨어를 구축하는 비용에 대해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이들 컴퓨터에 소요되는 반도체소재와 소자에 대해 언급하고 싶다.
최근 기사에 따르면 중국의 한 가상화폐 전문 채굴 기업에서 설치한 채굴기 수는 수천 대였다고 한다. 이 수천 대 컴퓨터 비용은 수백억 원이고 각각의 컴퓨터는 메인보드 위에 CPU, 그래픽카드, 램과 각종 연결포트 등 주변 장치들로 구성돼 한 대의 가격이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이라고 한다.이 중 핵심 연산 칩과 그래픽카드 반도체소자 제품들은 모두 실리콘 기반의 소재이다.
그럼 이런 컴퓨터 칩에 사용되는 실리콘의 가격은 어떻게 될까. 사실 실리콘은 지구상의 지각(규소, 모래와 바위)에 수없이 분포해 정말 싼 가격의 소재이다. 하지만 지천에 널려 있는 모래와 돌의 실리콘은 반도체 소재로 적용되기 위해서는 수없는 정제, 정련 과정을 거치게 된다. 특히 99.999999999% 고도의 순도화와 더불어 반드시 결합이 없는 결정면이 제어된 단결정 상태의 모재를 만들고 이를 가공하여 기판화해야 한다. 여기에 적절한 성능 즉 - n형, + p형 반도체가 되는 도핑(doping) 처리하고, 이후 회로를 만들기 위한 수많은 코팅, 연마, 리소그래픽 공정 등이 적용되어 가치는 수십, 수백 배가 된다. 사실 모래 속 실리콘의 가격은 0원에 가깝지만 고순도 반도체 기판은 12인치(직경 300㎜, 두께 0.5㎜)기준 40만~50여만 원이고, 모든 공정이 적용된 최종 소자기판의 가격은 약 27만5000달러/㎏(약 3억 원/㎏, 30만 원/g)이라고 한다.
우리 주변에서 통상 사용되는 금속소재 중에서 가장 비싼 소재는 역시 장신구로 사용되는 금이다. 금은 자연상에서 거의 순수한 상태로 존재하고 산화가 일어나지 않는 귀금속이기에 현재 24K라고 하는 순금(99.99%) 골드바의 시세는 약 6만 원/g(한국금거래소 기준)이다. 정말 비싸기에 화폐로서 가치를 부여받는다. 그런데 이 금도 순도 즉 불순물 제어에 따라 그 가치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최고 수준의 순도 99.999% 금은 가격이 무려 약 23만 원/g(Alfa Aesar사, 시약 기준) 4배 이상 된다. 가정집에 사용되는 전기선에 사용되는 통상의 구리재료는 순도 99.5%(구형분말 -100mesh, Alfa Aesar사 시약 기준) 일 때 약 560원/g이다. 하지만 같은 형태, 크기 기준의 고순도 99.999% 구리는 무려 약 2만1000원/g으로 장신구용 금 가격(14, 18K) 보다 훨씬 비쌀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수많은 재료는 용도, 순도, 재료의 가공 방법과 형태에 따라 다양하게 가치가 책정되는 것이다.
앞서 기술한 대로 무형의 비트코인은 1비트코인에 현재 900여만 원이지만 이를 만드는 채굴기 컴퓨터에 적용되는 반도체칩에의 가격은 30여만 원/g이다. 무형의 존재와 유형의 물체의 가치를 직접 비교할 수는 없지만 거의 0원인 실리콘 소재는 수많은 과정에 의해 가치가 부여되고 수백 배 상승하면서 연산 기능을 하게 돼 비트코인을 만들게 된다. 이런 이유로 재료공학적 측면에서는 무형의 비트코인보다도 유형의 실리콘이 훨씬 비싸지 않을까 생각된다.
울산대 교수·첨단소재공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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