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興)’ 많기로 치자면 우리 민족은 그 어떤 민족에게도 지지 않을 것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한자어인 흥은 ‘재미나 즐거움을 일으키는 감정’이라 정의하고, 순우리말인 신명은 ‘흥겨운 신과 멋’이라고 설명한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말이다. 하지만 감정적으로야 어떻게 명확히 나눌 수 있겠나. 그저 흥이란 말에는 즐거움 그 자체의 의미가 좀 더 묻어 있는 느낌이고, 신명이란 말에는 흥의 원래 뜻에 그로부터 생성된 ‘에너지’까지 더해진 것처럼 느낄 뿐이다.

한민족은 특히 ‘한(恨)의 정서’까지 신명으로 승화시키는 묘한 힘을 지녔다. 이런 신명의 에너지는 큰 잔칫날이나 축제의 장에서 소리와 몸짓으로 폭발하듯 터져나오기 마련이다. 우리 민족 고유의 신명을 표출하는 전통적인 ‘소리’는 ‘쾌지나 칭칭 나네’이다. 선창자가 “하늘에는 별도 총총”과 같이 사설을 붙이면, 여러 명이 후렴구인 “쾌지나 칭칭 나네”를 합창한다. 자연스럽게 덩실덩실 몸짓까지 끌어내는 이 노래는 본래 경상도의 민요다. 신명난 가락과 어떤 말이든 사설로 붙일 수 있는 확장성이 더해져 전국으로 퍼졌다.

‘쾌지나 칭칭 나네’가 경상도 민요인 건 분명한데, 기원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다. 그중 설득력이 높은 것은 임진왜란기 왜군 장수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등청정)가 패퇴해 도망가는 것을 보고 지금의 부산 울산 지방 백성들이 춤추며 부른 노래에서 기원했다는 설이다. “쾌재라, 청정(淸正)이 나가네”라고 부르던 것이 세월이 흐르면서 “쾌지나 칭칭 나네”로 변했다는 이야기다. 왜군의 억압에 시달리다 해방된 기쁨이 신명나는 가락으로 드러난다.

평창동계올림픽에 참가할 대한민국 선수단이 그제 열린 강릉올림픽선수촌 입촌식에서 ‘쾌지나 칭칭 나네’를 부르며 흥겨움을 만끽했다고 한다. 신명나지 않을 리 없다. 짧게는 4년, 길게는 십수 년을 한 곳만 바라보며 달려온 선수들이기에 인류 최대 평화의 축제 무대에 섰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즐거울까. 더구나 음식과 공기, 풍광, 경기장까지 친숙한 고국에서 열리니 더욱 흥겨울 수밖에 없다. 이제 오늘 개회식을 시작으로 17일간의 열전이 펼쳐진다. ‘스피드스케이팅 여제’ 이상화는 입촌식에서 각오를 묻는 질문에 “저 자신을 이기면 된다”고 말했지만, 역경을 딛고 여기까지 온 선수와 코칭스태프 모두가 이미 승리자나 마찬가지다. 무운을 빈다. “쾌지나 칭칭 나네.”

이승렬 논설위원 bungs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