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린가 싶다. 지난 2일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의 발언에 귀를 의심했다. 원내대책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지방분권 개헌 구상을 비판하면서다. 그는 “권력구조 개편이 아닌 지방분권 개헌을 들고나오는 것은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동문서답”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제왕적 대통령제를 종식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덧붙였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제왕적 대통령제를 종식하겠다는 데야 토를 달 일이 아니다. 그런데 왜 애먼 지방분권 개헌을 끌어들여 동문서답하는지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탓이다.

마치 짜기라도 한 듯 같은 날 홍준표 대표도 한 말씀 거들었다. 전날 발표된 더불어민주당의 개헌안을 두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사회주의 체제로 변경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날을 세웠다. 그는 또 “문 대통령이 헌법 내용을 잘 모르는 모양”이라며 “지금 헌법에는 지방분권이 선언돼 있어서 관련 법률만 고치면 지방분권은 완성된다”고 했다. 얼마 전 민주당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서 ‘자유’를 뺀 개헌안을 내겠다고 발표했다가 4시간 만에 번복한 걸 두고 사회주의 개헌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고 비판한 것이다. ‘자유’를 유독 중시하는 한국당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제왕적 대통령제 종식이든, 사회주의 체제 변경이든, 권력구조 개편과 기본권 문제의 방향을 두고야 어떤 비판이라도 오갈 수 있다. 한국당이 올 6월 지방선거 때 지방분권 개헌 동시투표 실시를 공약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후 지방선거에서 불리할 것으로 보이자 동시투표에 반대하는 것까지는 정략상 고육지책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사사건건 지방분권 개헌의 당위성까지 난도질하는 건 온당치 않다. 문 대통령이 드라이브를 걸고 있으니 스스로 공약했던 사안이건 말건 지방분권 개헌에 이유불문하고 딴지를 걸고 있는 것이다.

한국당의 올 6월 개헌 투표 동시 실시 공약 번복은 이미 지난해 10월 무렵 홍 대표가 애드벌룬을 띄우면서 사실상 당론이 됐다. 공약을 뒤집었으니 지방분권 개헌이 불필요하다는 이유를 제시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일. 마침내 홍 대표는 지난달 16일 부산에서 열린 부산시당 신년인사회에서 속내를 드러냈다. 그는 “(정부여당이) 마치 우리를 지방분권에 반대하는 것처럼 악선전을 해서 좌파 사회주의 경제체제 헌법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며 “개헌을 하지 않아도 지방분권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 이유는 지난 2일 밝힌 것처럼 법률만 개정하면 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지방분권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는 홍 대표의 말은 한 달도 되지 않아 진정성을 믿기 어렵게 돼 버렸다. 지방분권 개헌을 들고 나오는 게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동문서답이라는 김 원내대표의 발언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지방분권 개헌이 아니라 제왕적 대통령제 종식에 집중해야 한다는 의미일 수 있다. 하지만 달리 보자면 개헌 시기를 떠나 지방분권 자체를 부정하는 속내가 보인다. 공약을 번복하고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려다 보니 너무 앞서나간 셈이다. 이쯤되니 과연 누가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를 하는 건지 궁금해진다.

관련 법률만 몇 개 고치면 지방분권이 완성될 수 있다는 주장부터 보자. 현행 헌법상 지방자치단체는 법령의 범위 안에서 자치에 관한 규정을 제정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당 주장과는 달리 헌법을 바꾸지 않고는 자치입법권, 자치조직권이 실현될 수 없다는 게 지방분권 전문가들의 이야기다. 백번 양보해 그게 가능하다고 치자. 그렇게 간단한 일이라면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 동안 왜 스스로 발 벗고 관련 법률 제·개정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나. 자신들은 손을 놓고 있다가 정권이 바뀌니 뭘 잘 모르는 여당에게 한 수 가르쳐주는 건가.

지방선거 때 개헌 동시투표를 두고 “젊은 연령대는 8표를 다 (투표)해도 아무 문제가 없을지 모르지만 고령자가 많은 사회”여서 어렵다는 김 원내대표의 주장도 뜬금없긴 마찬가지다. 이는 노회찬 원내대표가 국회 대표연설에서 기표란이 26개나 되는 미국 대선 당시 한 지역의 투표용지를 보여주면서 깔끔하게 반박했다. 아무리 동시투표 불가의 논리가 궁색하기로 기표란이 많아 반대한다는 건 설득력이 떨어진다. 자칫 우리나라 고령층의 수준이 미국보다 낮다고 보는 것으로 비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한국당은 그간 구체적인 개헌안을 내놓지 않다가 내달까지 자체 개헌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어떤 내용이든 우선 개헌 동시투표 공약 번복을 사과하고 그 이유를 명확히 밝히는 게 옳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방분권 개헌이 왜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동문서답인지 합당한 근거를 지역 유권자에게 제시해야 한다. 그게 오랫동안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을 외쳐온 지역민들에 대한 올바른 도리다.

논설실장 jj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