슘페터가 시대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저성장의 늪에서 벗어나 지속 성장을 갈망하는 우리에게 ‘창조적 파괴’라는 명쾌한 해법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본주의 발전의 원동력을 낡은 것을 버리고 새것을 창조하는 ‘기업가 혁신’으로 설명했다. 이처럼 자본주의 발전의 본질을 가장 잘 꿰뚫었다고 평가받는 슘페터였지만, 그는 1942년 ‘자본주의·사회주의·민주주의’라는 저서에서 자본주의는 멸망하고 사회주의 사회가 도래한다는 역설적인 예언을 했다.
그의 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반복된 혁신에 대한 피로감은 기업가 정신을 약화시키고, 모험적이었던 기업을 매너리즘에 빠지게 만든다. 둘째,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고학력자가 늘지만 좋은 일자리는 원하는 만큼 늘지 않는다.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한 이들은 자본주의에 불만을 품고 사회 비판에 앞장서면서 자본주의의 사회적 지지 세력이 붕괴할 것이다. 셋째, 자본주의의 경쟁은 불가피하게 소상공인의 경제적 존립기반을 흔들어 놓는다. 그러나 투표권을 가진 이들의 정치적 영향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이들을 위한 다양한 방안이 마련될 것이다. 부의 편중을 완화하기 위해 소유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고 약자 보호를 위해 노동계약 등 계약의 자유에도 제한을 가져오게 된다. 결국 자본주의의 제도적 기본골격인 ‘사유재산’과 ‘자유계약’도 침해당하고 만다. 넷째, 민주주의와 관련해 정치적 포퓰리즘은 국가 에너지를 소진하게 만든다.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정당들이 인기 영합 정책을 남발한다면, 국가정책은 장기적 이익보다는 단기적 이익에 치우쳐 자본주의의 성장 잠재력은 약화될 것이다. 슘페터는 자본주의는 경제적으로 성공하지만 사회와 정치면에 변화를 가져와 자본주의는 장기적으로 사회주의로 옮겨갈 수밖에 없다고 본 것이다.
자본주의는 사상 유례 없는 발전과 풍요를 가져왔지만 동시에 부의 불균형, 노사갈등, 중소상인의 도태, 청년실업 등의 문제를 낳았다. 하지만 슘페터의 예언과는 달리 지난 70년간, 자본주의는 역동적으로 지속 발전했다. 오히려 몰락한 것은 베를린 붕괴에서 보듯이 사회주의였고, 중국 베트남 등도 성장을 위해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받아들여야 했다.
슘페터가 간과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기업뿐 아니라 시장도 혁신한다는 것이다. 시장 역시 자본주의의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끊임없이 진화·발전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자본시장이다. 주식 채권 등에 투자하는 자본시장은 경제적 수익에 가장 민감한 시장으로 알려졌으나, 이 시장도 변하고 있다. 투자가들은 경험을 통해 환경 문제나 노사갈등 등 사회 문제를 야기하거나, 지배구조가 불안정하여 분식회계 등을 방치한 기업은 결국 문을 닫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제 선진국의 주요 투자가들은 기업의 수익 등 경제면만 보고 투자하지 않는다. 영업실적 외에 그 기업이 사회적, 윤리적으로 바람직한지도 동시에 고려하는 ‘사회적 책임투자(SRI)’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투자 선정방법으로 투자대상 기업의 재무적 측면뿐 아니라 비재무적인 환경, 사회, 지배구조(ESG)를 고려하게 되었다. 그러자 2006년 4월,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유엔 사무총장과 유럽과 미국의 주요 연기금과 민간 자산운용사의 대표들이 모여 ‘사회적 책임투자원칙(PRI)’을 발표했다. “투자분석과 의사결정 과정에 환경, 사회, 지배구조(ESG)를 적극적으로 반영한다”고 하여 사회적 책임투자를 투자의 기본원칙으로 확립한 것이다. 여기에 시장은 개인투자자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사회적 책임투자와 관련된 벤치마크 지수를 속속 내놓고 있다. 세계지속가능투자연맹(GSIA)의 ‘2016년 동향보고서’에 의하면 사회적 책임을 고려한 투자의 비중이 이미 유럽은 50%를 넘었고 미국도 20%에 달했다. 이에 기업들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강화하고 있다.
선진국 자본시장에서 ‘사회적 책임투자’는 이미 대세가 되었다. 시장은 좋은 기업이 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게 만들어 사회 문제를 개선하고 지속발전의 기틀을 다지고 있다.
비록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 시작단계이지만 조만간 빠른 속도로 확산될 것이다. 굳이 정치와 공권력이 기업이나 시장에 간섭하지 않아도 시장은 스스로 좋은 기업, 좋은 사회를 만드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자본주의에 대해 조바심을 갖기보다는, 혁신을 선도해 가고 있는 시장의 역동성에 대한 믿음을 갖고, 선진국 자본시장의 변화를 주목해 살펴보아야 한다.
전 한국IR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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