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는 사회적 병리 현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신음하고 있다. 마음이 아프고 몸이 고달파서 정상적인 사고와 행동의 지표를 잃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에 살고 있지만 빈곤층이 체감하는 가난은 심각하다. 청년 실업자 수가 늘어나고 이들이 빚을 지고 살아가면서 연애, 결혼, 출산, 직장, 내 집 마련을 포기해야 하는 이른바 ‘5포 세대’가 마음을 또한 아프게 하고 있다. 개개인의 가치관과 윤리가 무너지고 여성의 사회 참여가 급증하면서 성희롱, 성폭력이 끊임없이 발생하여 마음을 무겁게 하고 있다. 또한 다민족 다중 사회의 증가와 3만 명의 탈북민에 대한 생활 대책도 국민 모두가 부담해야 할 과제다.
도시철도 등 대중교통에서 스마트폰으로 자신의 관심 분야를 검색하고 있는 모습은 개인적으로는 긍정적이지만 공공장소에서는 부정적인 면도 있다. 도시철도에서 경로석이 모자라 노인이 불편한 몸으로 젊은이 앞에 서 있지만 젊은이는 스마트폰에 열중하고 있으니 알지 못한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정작 본인은 알지 못하고 있거나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자기도 모르게 습득된 생활 습관을 스마트폰이 고쳐줄 수 없다. 남을 이해하고 배려한다는 미풍양속은 인문학적 학습과 사고에서만 얻을 수 있다. 지난 세대는 생활환경이 열악했지만 남을 이해하고 배려할 줄 알았다.
학교는 교사의 권위보다는 학습권만 인정하다 보니 교사의 열성은 식어가고 학습의 자유 방임이 일반화되고 있다. 교사들은 이를 알고 있으면서도 학습권에 눌려 방치한다. 이런 환경 때문에 부유층 학부모는 과외 학습에 의존하고, 빈곤층에서는 자녀교육을 방치해 학력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요즘 학생들의 생각은 단편적이고 일회적이면서 남의 말을 듣기를 거부한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는 것’(學而時習)은 고전과 교사의 훈육에서 쌓여 가는데 단편적이고 일회적인 인터넷 학습으로는 크게 부족하다. 또한 ‘기쁘지 않은가’(不亦說乎)가 일회적일 수밖에 없다. 어른과 교사의 가르침을 불필요한 간섭으로 여기는 상황에서 지성적인 소양 습득이 가능한지 의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간섭 받기를 거부하면서 간섭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직접 듣거나 보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무절제한 댓글을 쏟아낸다.
언어에서 어(語)는 대화 상대가 있어야 하고 언(言)은 혼자서 전달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을 논하는 말에 논어가 있고 성서가 있다. 혼자서 하는 언(言)은 상대를 염두에 두고 있지 않기 때문에 언어폭력에 이성이 작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언어폭력은 성폭력과 같은 차원에서 다루어야 한다. 실존 철학에서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고 했다.
진보와 보수 세력은 비판과 비난을 구분 못하고 상호 비방하고 반목하며 국민을 분열시키고 있다. 누구든지 사람을 좋아할 수도 있고 미워할 수는 있으나 통상 좋아하는 감정은 잠시이고 미워하는 감정은 오래간다. 한국인의 정서는 자기와 관련이 있고 좋아하는 사람이면 오점이 있어도 덮어주지만 미워하는 사람이 오점을 남기면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언어는 성품에서 나온다. ‘거짓으로 낯빛을 선한 척하는 사람 중에 어진 사람을 보지 못했다’는 공자의 말씀처럼 사람은 자신의 오점을 감추기 위해 포장하지 말고 내면을 가꾸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 때로는 어질지 못한 사람을 심하게 공격하면 분란을 일으키는(논어, 태백편) 경우가 있어 사회를 왜곡하고 막말을 하면서도 자신을 정당화하려고 한다. 플라톤이 철인 정치를 주장하여 이성적인 인간을 지도자로 보고 공자가 인(仁)을 정치 완성으로 보는 것은 만고의 진리이다. 세상 이치가 영원한 선도 악도 없고, 영원한 긍정도 부정도 없기에 무엇이든 행한다는 보장이 없고, 부정한다고 해서 무엇이든 행하지 않는다는 보장을 못한다. 세상에는 지자(智者)도 필요하고 인자(仁者)도 있어야 역사를 역동적으로 이끌기도 하고 차분하게 정리한다. 지자는 사리에 밝아서 물처럼 막힘이 없고 인자는 의리에 편안해지고 중후한 모습이 산과 같다고 했다(智者樂水 仁者樂山 智者動 仁者靜 智者樂 仁者壽, 論語).
진보적이라는 의미는 다소 이상이 높은 가치이다. 고집이 센 사람은 양심과 신조에 어긋난 일을 하지 않는 다소 보수적인 사람이다. 이 두 가지를 균형 있게 갖추기는 어렵다. 그래서 부득불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 경우가 있다. 전자는 성품이 지나쳐서 다소 서두르고 거칠어서 목적 달성에 급급하다. 후자의 경우 의지가 약하여 침묵을 지키거나 관망하는 자세를 취한다. 진보와 보수가 같은 의견을 보일 때도 있지만 다를 때는 균형 감각을 갖추어 이성적인 비판과 판단을 취해야 한다. 아픈 사회의 처방은 논어의 능근취비(能近取譬), 즉 ‘자기 자신을 아끼는 만큼 다른 사람도 그렇게 해주라’는 경구에서 찾아 새길 필요가 있다.
남명학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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