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말 영화 ‘퍼펙트 게임’이 개봉했다. 한국야구가 낳은 불세출의 투수들, 고(故) 최동원(1958~2011)과 선동열(55)의 치열했던 라이벌전을 소재로 한 영화다. 최동원이 그해 9월 14일 운명한 지 석 달여 만의 개봉이어서 더 큰 관심을 끌었다. 무대는 1987년 5월 16일 부산 사직야구장. 롯데 자이언츠와 해태 타이거즈 간 대결에서 양팀 에이스 최동원과 선동열이 맞붙었다. 두 사람은 이전까지 두 차례 맞대결에서 1승 1패로 승부를 가리지 못한 터였다.

그러나 최동원이 209개, 선동열이 232개의 공을 던지며 연장 15회까지 혈투를 펼쳤지만 결과는 2-2.승부를 가리지 못했지만 이 경기는 프로야구 사상 최고 명승부로 남아 있다. 영화 포스터 속 문구도 기억에 선명하다. “세상은 우리를 라이벌이라 부릅니다.”

개봉 무렵 선동열은 인터뷰에서 고백했다. “최동원 선배는 나의 ‘롤 모델’이었다. 세상은 우리를 라이벌이라 부르지만, 그는 나의 우상이었다. 1982년 세계선수권에서 일본과 승부했을 때보다 더 선배를 이기고 싶었다. 우상이었으니까 극복하고 싶었다.” 그의 고백은 다시 만날 수 없는 다섯 살 선배에 대한 최대한의 경의이자 예우다.

선수에게 우상과 라이벌은 자신을 키워주는 별 같은 존재다. 선수라면 바로 그 우상과 라이벌이 되고, 나아가 극복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쏟기 마련이다. 정현(21)은 오랜 우상이었던 노박 조코비치(31·세르비아)를 16강에서 극복한 여세를 몰아 호주오픈테니스 4강에 올랐다.

설날 아침 온 국민에게 ‘금빛 세배’를 한 평창동계올림픽 스켈레톤 금메달리스트 윤성빈(24)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우상이자 최대 라이벌인 마르틴스 두쿠르스(34·라트비아)를 눌렀다. 하지만 4위에 그친 두쿠르스에 대해 윤성빈은 “그는 여전히 나의 우상이다. (올림픽에서 이겼다고) 내가 그 선수를 평가할 수 없다”고 했다. 우상에 대한 최대한의 예우이자 경의다. 고교 3년생이던 2012년 스켈레톤 입문 때부터 윤성빈은 ‘스켈레톤계 우사인 볼트’인 두쿠르스의 기술을 배우고 따라하며 성장했다. 자신을 키워 준 ‘팔 할’은 두쿠르스를 닮고자 했던 열정이었음을 부정하지 않았다. 마침내 우상을 극복한 후에도 경의를 잃지 않는 마음가짐과 자세, 그리고 패자에 대한 위안과 공감의 표현. 그것이야말로 스포츠의 매력이자 냉정한 승부의 세계를 따뜻하게 데워주는 인간적 요소가 아닐까.

이승렬 논설위원 bungs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