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평창동계올림픽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지난 9일 막이 올랐으니 2주일 이상 전 세계를 들썩거리게 하고 있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언론매체를 도배하다시피 하는 관련 기사를 보노라면 어떨 때는 과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뭐 어쩌겠는가. 우리나라에서 이만큼 큰 행사가 열린 것도 30년 만이니 크게 나무랄 일은 못 된다.

그 덕분에 얻게 된 지식도 많다. 쇼트트랙이나 피겨스케이팅처럼 우리에게 낯익은 것 외에 동계올림픽 종목이 그렇게 다양한 줄은 솔직히 몰랐다. 프리스타일 스키의 에어리얼이니 하프파이프, 모굴 같은 것들은 국내에서 열린 이번 대회가 아니었다면 앞으로도 거의 모르고 지낼 뻔 했다. 한편으로는 동계스포츠를 위한 여건이 타국에 견줘 절대 부족한 우리나라 선수들이 세계의 강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것이 자랑스럽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이른바 ‘2030세대’의 움직임이 흥미롭게 느껴진다. 이들은 신세대답게 대회와 관련한 사안 하나하나에 즉각적인 반응을 SNS 등을 통해 내놓는다.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찬사를 보낸다. 물론 2030세대의 생각이 모두 온당한 것은 아닐 터다. 감정에 치우친 나머지 걸러지지 않은 글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들의 의견은 특정 현상을 바라보는 젊은 층의 사고를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름대로의 가치를 지니는 것이 분명하다.

따지고 보면 이번 평창동계올림픽은 시작 때부터 2030세대와 악연(?)이 있었다. 정부의 갑작스러운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 발표가 이들의 감정을 자극했다. 치열한 경쟁을 거쳐 어렵게 따낸 국가대표팀 자리를 정치적 논리에 따라 북한팀에게 나눠준다는 게 어불성설이라는 논리였다. 청와대 게시판에는 대선 때 정의와 공정성을 외쳤던 현 정부에 대해 실망을 표출하면서 단일팀 철회를 요청하는 청원이 줄을 이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배우면서 자란 기성세대에게는 적잖게 당혹스러운 장면일 수밖에 없었다.

2030세대의 딱 부러짐은 올림픽 기간에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이들은 우리나라 선수일지라도 공정성을 잃었다고 보이는 행위에는 가차 없는 비판을 보냈다.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에서 나온 ‘노선영 왕따’ 논란과 관련한 2030세대의 냉혹한 반응이 대표적인 사례다. 반면 최선을 다했다면 입상에 실패해도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자국 선수라면 앞뒤를 가리지 않고 일방적인 응원을 하고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온갖 비난을 했던 과거 세대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젊은 세대들은 경기 외적인 부문에서 불거진 불합리에 대해서도 참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곳에 들어간 뒤 스켈레톤 금메달리스트인 윤성빈 선수와 ‘인증 샷’을 찍었다가 여론의 몰매를 맞았다. 이기홍 대한체육회 회장은 대회 자원봉사자에게 갑질을 했다는 이유로 2030세대의 집중 질타 대상이 되면서 공식 사과를 해야 했다.

전문가들은 2030세대의 이런 태도는 원칙과 공정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세태의 흐름을 반영하는 것으로 풀이한다. 여기에는 개인의 능력이 모자라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실력 외 다른 변수가 존재하는 것을 받아 들이지 못하겠다는 사고가 깔려 있다. 흙수저 논란에서부터 공기업 채용 비리 등에 이르기까지 사회 곳곳에 만연한 부조리를 목격하면서 이들이 공정성의 중요함을 더욱 느끼게 됐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올림픽이 끝나면 곧 지방선거가 다가온다. 정치권은 기득권 세대의 고정관념이 통하지 않는 2030세대의 표심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모양이다. 자유한국당은 남북 단일팀 구성 과정에서 불거진 젊은 층의 실망이 선거에서 호재가 될 것으로 잔뜩 기대하고 있다. 홍준표 대표만 해도 지난 21일 “힘들게 유치한 평창올림픽이 ‘평양올림픽’으로 바뀌고 2030세대가 열광했던 비트코인에 대한 정책 혼선으로 밑바닥 민심이 급격하게 바뀌기 시작했다”며 지방선거에서 승리를 자신했다.

민주당도 사태의 심각함을 감지하지 못하는 바는 아닐 것이다. 반면 대응은 다소 안이한 것처럼 보인다. 민주당 측은 지난 달 “남북 단일팀이 평화에 기여하는 가치를 확인하게 되면 젊은 층의 생각이 달라지게 될 것”이라는 원론적인 논평을 냈고 최근에는 남북이 올림픽에서 새 역사를 썼다며 애써 의미를 부여했다. 자당에 대한 2030세대의 지지율 하락을 일시적인 현상이라 여기고 있는 듯하다.

어느 쪽 판단이 옳았는지는 지방선거가 끝나보면 알 일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올림픽 전후로 확인된 2030세대의 가치관을 정치권이 읽지 못한다면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올림픽을 바라보는 기존의 틀을 바꾼 젊은 세대라면 낡은 정치판을 바꿀 힘도 충분히 갖고 있기 때문이다.

논설위원 haore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