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치는 끝났다. 평창동계올림픽이 겨울 스포츠의 지평을 넓히고 어제 막을 내렸다. 어김없이 시간은 흐르고, 또 다른 메가 이벤트가 다가온다. 오는 6월 지방선거다. 당장 다음 달 2일부터 기초단체장과 광역·기초의원 예비후보자 등록이 이뤄진다. 새봄과 함께 선거 열기가 무르익고 있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꽃피우겠다며 선거에 나서는 이들을 보면서 다산 정약용(1762~1836)을 떠올린다.

200년 전, 다산에게 57세이던 1818년은 무척 의미 있는 해였다. 그해 봄 다산은 공직자의 바이블로 통하는 ‘목민심서’(牧民心書) 48권을 완성했다. 그리고 9월엔 18년 유배 생활을 끝내고 귀향했다. 다산이 나고 죽은 고향 마현을 품은 경기 남양주시가 올해를 ‘정약용의 해’로 정하고 각종 기념사업을 펴는 이유다. 또 한 사람, ‘다산의 해’로 명명한 이가 있다. 지방선거를 다산이 꿈꾼 ‘깨끗한 세상’을 만드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이다.

다산학 전도사로 통하는 박 이사장은 지난 19일 1000번째 ‘풀어쓰는 다산이야기’에서 “새로운 나라를 만드는 일은 지금이 적기”이며 “지방선거부터 시작하자”고 강조했다. 박 이사장은 2004년 다산연구소를 개설한 이후 14년 동안 꾸준히 ‘풀어쓰는 다산이야기’로 다산의 실사구시 사상과 철학을 전하고 있다. 이 이메일을 받는 사람이 현재 40만 명에 이른다. 다산의 육성에 가장 가까운 사람인 셈이다. 그래서 목민심서 200주년의 의미를 박 이사장에게 전화로 물었다.

“요즘 시장이나 군수라 할 목민관이 부임할 때부터 그만두기까지 마음가짐과 태도를 적시한 72조항의 목민심서를 두 글자로 압축하면 공렴(公廉), 즉 공정과 청렴입니다. 공직윤리의 핵심인 공렴을 바탕으로 자신을 다스리고(律己·율기), 나라와 사회에 공헌하며(奉公·봉공), 백성을 사랑하자(愛民·애민)는 것입니다. 지난 정권에서 불거진 적폐의 뿌리는 공렴하지 못한 데 있지요. 지방선거는 아래로부터 공렴의 터전을 닦는 출발점이 되어야 합니다. 다산이 환생한다면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요.”

다산은 28세에 과거에 합격하며 벼슬길에 나섰다. 개혁군주 정조는 그를 두고 ‘100년 만에 나온 재상감’이라고 격려했다. 다산은 ‘공정과 청렴으로 나랏일에 정성을 다하겠다’(公廉願效誠·공렴원효성)는 내용이 포함된 오언율시로 출사표를 던졌다. 그 다짐이 오롯이 목민심서에 담긴 것이다. ‘털끝 하나도 병들지 않은 곳이 없고, 그래서 당장 개혁하지 않으면 반드시 망할 나라’를 구하려는 현실적인 처방전이다. 국가 대개조 프로젝트라 할 ‘경세유표’(經世遺表), 형벌과 옥사를 다룬 ‘흠흠신서’(欽欽新書)와 함께 다산의 정법삼집(1표2서)을 이루며 동아시아 최고의 목민서 반열에 오른 배경이다.

다산의 공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젊은 영암군수 이종영에게 준 육렴(六廉)의 교훈이다. 목민심서를 마무리하기 4년 전인 1814년 3월 강진의 다산초당으로 찾아온 이재의가 다산에게 아들인 이종영을 위해 목민관이 지녀야 할 자세를 담은 글을 부탁한다. 노론 출신인 이재의는 남인 출신인 다산과는 정치적으로 대척점에 있었고 열 살 연하였지만 시와 술로 우정을 나눴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위영암군수이종영증언’(爲靈巖郡守李鍾英贈言)이다. 목민관으로서 훌륭한 업적을 남기려면 廉 자 여섯 개를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게 요지다. 우선 재물·색(色)·직위에 청렴해야 한다. 당연히 청렴해야 투명한 공직생활을 할 수 있고, 공직자로서의 위엄을 유지할 수 있으며, 강직한 성품으로 공직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산은 이에 더해 목민관이 어떻게 형벌을 사용할지 자세하게 설명한다. 민사(民事)에 잘못을 저지르면 최고의 형벌인 상형(上刑), 공사(公事)에는 중형(重刑), 관사(官事)에는 하형(下刑)으로 처벌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목민관의 사사로운 일인 사사(私事)에는 무형(無刑), 즉 문책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으니 이 육렴과 사형(四刑)은 목민심서의 축소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이종영은 24세. 이번 지방선거로 공직에 첫발을 딛는 사람들이 곱씹어야 할 경구로 이보다 나은 게 있을까 싶다.

고향으로 돌아온 다산은 회갑을 맞아 파란만장했던 일생을 되돌아보는 ‘자찬묘지명’(自撰墓誌銘)을 짓는데 이때 다산(茶山)이 아니라 사암(俟蓭)이라는 호를 쓴다. ‘초막에서 기다린다’는 의미를 가진 이 호는 뒷날을 기다리겠다는 간절한 바람으로 읽힌다. 그 속에서 그가 이룬 학문적 성취에 대한 자신감과 새로운 세상을 향한 기대감이 묻어난다. 목민심서의 심서가 ‘목민할 마음은 있지만 몸소 실행할 수 없는 처지 때문’이라는 이유와 통한다. 다산의 바람을 실현할 반듯한 목민관을 뽑는 것은 우리 몫이다. 다가오는 지방선거가 그래서 중요하다.

수석논설위원 jsdo@kookje.co.kr